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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Jul 30. 2024

롱베케이션

깊은 잠에서 불현듯 깨어나 내 주위를 쉴 새 없이 냥냥거리며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한참 쓰다듬고는 머리맡에 둔 책을 몇 쪽인가 읽었다.

어느 틈엔가 또 사라져 버린 왼쪽 귀의 피어싱,

냉장고 구석에서 딸기 요거트 하나를 발견한 아침.

차가워진 복숭아는 마침맞게 달콤한 맛이다.

조금만 먹으려고 사 등분 해 냉동실에 얼려둔 베이글은 한 번에 네 쪽을 다 꺼내 먹고도 어딘가 부족해 한쪽을 더 꺼냈다. 토마토는 이미 두두 머리만 한 걸 두 개나 먹었으니 치즈만 조금 더 자를까, 얼마 남지 않은 에멘탈을 몽땅 썰고 보니 그 옆에 프룬이 있길래 그것까지 꺼내버렸다.

좋아하는 걸 죄다 늘어놓고 잔뜩 먹고 나니 누군가 만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몇 명인가의 얼굴을 떠올리다 평일 대낮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이번에는 궁금했던 향수를 시향하러 백화점이라도 가볼까, 어쩐지 무언가 사고 싶은 기분이다. 이 기분으로 이번 달 생활비를 초과하는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샀던가를 뉘우치며 간편한 차림으로 나선다. 쏟아지는 볕을 맞으며 동네 서점에 가는 길. 얼굴 염증은 어느 정도 들어간 것 같은데 선크림을 발라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스킨로션 이외에 금지당했다. 괜찮아 보여 화장하면 다시 염증이 심화되는 식) 아이스크림을 끊었더니 하루 종일 먹고 싶은 걸 잔뜩 다 먹고도 체중이 줄었다. 체중이 줄어도 늘어도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얼굴 염증으로 화장을 못 해도 타인들은 뭐가 크게 다른지 모른다. 눈이 세 개가 되지 않는 이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늘 비슷한 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안심되기도 하는 요즘, 역시 백화점에 갈 걸 그랬나 생각하며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것이 나의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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