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내 1 정도의 돈을 벌었는데 7년 만에 회사에 들어갔더니 급여가 3 정도 나왔다. 이건 내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평생 매달을 1로 살던 사람에게 3이 주어진다는 건 먹고 싶은 걸 고민 없이 먹고 갖고 싶은 걸 조금 덜 고민하고 사면서도 약간의 저축까지 할 수 있는 정도의 풍요였다. 문제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발생했는데, 회사를 그만두자 나는 1로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물가가 많이 올랐고 나도 여러 가지 체면과 염치를 차려야 할 나이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 일하며 매일 끝없이 걷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던 시절은 갔다. 이제 매일을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어 일하며 겨우 3 정도를 벌고 있다. 주휴수당 없이 3 정도를 벌기란 이만큼 고단한 일이었구나. 3에 크게 기뻐했던 때는 빠르게 과거가 되었고 이제 내게 3은 더 이상 큰돈이 아니다. 종종 고작 이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더 이상 푹 잘 수도, 잠깐 나가 걸을 수도, 책을 펼 수도 없다는 사실에 크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건 내가 선택한 길이고, 실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만 빼면 일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조각내어 3에 퍼즐처럼 맞춰놓았기 때문이다. 종종 영원히 흘러넘칠 것만 같던 너무 많은 시간들을 흘려보내던 때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끝없이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오직 3에 기뻐하던 시절을 꿈처럼 떠올리곤 한다. 이미 통과한 시간들. 더 이상 3에 기뻐할 수 없는 사실이 아주 슬퍼지기도 하지만 묵묵히 일을 마치고 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리하여 더 행복해졌는가, 같은 질문은 이제 하지 않는다. 이 상태를 슬픔도 단념도 성장도 아닌 그저 어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쇼윈도에 비치는 바쁘게 걷는 내 얼굴은 처음 보는 나이를 하고 있다. 부쩍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그러나 나쁘지 않다 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