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친구가 내민 묵직한 종이봉투를 받아 들고서야 내가 늘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전시가 있는데 같이 갈래요, 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근처에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며 데리고 간다. 이 책 좋은데,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상대방의 의견도 묻지 않고 두툼한 책을 빌려주거나 무지개 들어보셨나요 꼭 들어보세요 음악 링크도 보낸다.
오래전 생일에 다른 친구에게 받았던 커다란 종이 꾸러미에는 친구와 함께 다니며 내가 좋다고 했던 것, 귀엽다고 했던 것, 갖고 싶다고 했던 것, 흘러가는 말로 아무 의미도 없이 꺅꺅거리며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이 몽땅 들어있었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천지개벽할 정도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다.
오늘 만난 친구가 건네준 종이봉투에는 책이 들어있었다. 날씨가 좋으니 좀 걷자며 경복궁에서 광화문으로 광화문에서 안국으로 내가 좋아하는 동네 순환을 하며 들렀던 서점에서(서점 갈래요? 서점이 근처에 있으면 꼭 가고 싶잖아요), 매대를 돌며 이 책 어땠나요, 이 책 추천이에요, 앗 이 책 갖고 싶던 거다, 하던 중 갖고 싶던 거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계산을 할 때도 그냥 내가 이야기해서 궁금해졌나 보다 했을 뿐이지 그 책을 선물로 내게 건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책 두 권이 든 (한 권은 내가 빌려주었던) 묵직한 종이봉투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정말 미농지 같은 사람이구나 아니 어쩌면 투명 파일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친구들이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는지 의아했는데 그냥 내가 쉴 새 없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이었다. (아까 세계과자점 구경가자고 해서 한 바퀴 돌며 좋아하는 간식에 대해 쫑알쫑알 떠들었더니, 간식을 이렇게 오래 구경한 거 처음이라고 해서 그것도 깜짝 놀랐다. 나만... 나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었니)
그러면서도 그 책이 내 선물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부분에서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약간 질리기도, 그 단순함이 되려 명확하기도 한 다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일어나 오후에 아침을 먹으며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평온한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