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나의 친구가 되어준 쇼코와 달이 뜬 밤
인적이 드문 어두워진 골목을 나와 역 쪽으로 걸어가자, 거리 곳곳 야외테이블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인다.
아, 오늘 토요일이었지.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하고 있어서 주말인 걸 잊었다.
군청색으로 물든 하늘에는 아름다운 반달이 선명하게 떠 있고, 야외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기 딱 좋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밤이다.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피곤이 잔뜩 내려앉은 얼굴로 나섰지만 저마다 즐거운 사람들로 붐비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거리를 걷고 있자니 어쩐지 나까지 흥겨워지는 기분이다.
치킨집 옆, 문을 닫은 카페 야외 테라스에는 반달을 닮은 눈동자를 가진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다. 꿈속같은 풍경에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한다.
지하철을 내리자 역 앞에 귤 트럭이 보인다. 오랜만에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 머릿속으로 흥얼거리며 옆을 지나가자 산뜻한 귤 향기가 풍긴다. 잠깐 거리의 풍경이 온통 겨울로 뒤바뀌고 단번에 마음이 설렌다. 어쩔 수 없이 또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떠올린다. 귤이 보여준 언니의 기억, 읽을 때마다 무방비하게 울게 되던 책.
집에 도착하자 고양이가 배고프다며 나를 따라다니면서 화를 낸다. 열 번 스무 번 미안해 사과하며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고 좋아하는 파우치를 하나 뜯어준다.
맛있게 먹고 화장실을 간 사이 비어 있는 사료 그릇도 채워주려는데, 그 소리를 듣고 급하게 화장실에서 튀어나온 두두의 얼굴이 순간 몹시도 두부처럼 보여 잠시 멈칫한다. 이미 밤 열 시가 넘었지만 해야 할 작업이 남아있어 나도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사료를 부어주며 생각했지만 그것도 귀찮아져 사과를 하나 자른다.
역시 밥 잘 먹는 것도 체력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물을 끓여 티백을 우리고 소파에 찌그러져 앉은 채 사과를 아삭아삭 먹고 있자니 두두가 바로 옆에 배를 드러낸 채 눕는다. 그 말랑보들한 배를 쓰다듬으며, 오늘 일을 하는 사이사이 그 잠깐의 모든 시간들이 다 행복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강 작가님의 책이 품절되어 서점에서 사지 못했기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까 하다가, 노벨문학상 리커버가 나오면 기념으로 그걸 사기로 한다. 줄 서서 책을 사고 인터넷 서점 서버를 다운시키고 하루 만에 평소 450배의 판매고를 올리게 한 사람들이 몹시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어대던 아이들을 보며 대체 뭐가 저렇게 즐겁나 생각하던 냉소적인 청소년이었지만, 자라고 보니 알겠다. 인생에서 큰 이벤트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고, 그렇기에 뭐든 기회가 될 때면 최고로 즐겨주는 사람이 승자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신기할 정도로 들떠, 나는 그저 책 몇 권을 읽은 사람일 뿐인데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싶다. 마음이 마음으로 끝나는 건 결국 전해지지 않더라, 책이라도 사는 것으로 작은 감사를 전하자. 책을 사려면 또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렇게 겨우 다시 몸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