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자리의 생일을 선물받은 다음 날, 등기가 하나 도착했다. 문 앞에 붙은 우편물 도착안내서를 보고 작가님께 받기로 한 무언가가 있었나 골똘히 생각해 본다. 전시 엽서를 보내주시기로 했었나? 그건 이미 받은 것 같은데.
도착한 것은 다름아닌 두부와 두두와 나를 그린 그림이었다. 천칭자리의 생일은 현진에게 선사하기로 했는데, 아마 그걸 알지 못했을 때 보내어진 그림이 마침 그 다음 날 생일 선물처럼 도착했고 그림의 뒷면에 현진이라고 쓰여있어 기분이 묘해졌다. 가슴에 뚫린 구멍이 당신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증명이라고 하치가 그랬는데, 그래서 두부가 떠난 뒤 나는 이 가사를 한참이나 되뇌였는데, 나도 도넛홀이 생겨버렸는데. 도넛이 된 채로 그림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뜬금없이 고디바와 협업한다며 10년 만에 도넛홀의 뮤직비디오가 새 버전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걸 보고있자니 도넛홀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던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의 등장인물이 떠오른다. 빵집 아들로 태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넛처럼 살기... 비슷한(안 비슷할지도) 글을 썼던 김연수 작가님도 떠올려본다. 신주쿠 역에서 매일 커피와 도넛을 먹던 와타나베도. 와타나베가 아니었나? 그냥 하나하나의 일들을 어느새 줄을 세워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빙고가 맞춰져 꽃종이가 든 종이 박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종이 박 같은 건 터져도 그냥 와-하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청소하며 끝날 테지만.
열 두 시간 동안 자수를 한 시월의 첫째 날.
열 두 시간 치 자수로 달력 인쇄비 얼마를 충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왜 이렇게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달리기하듯 일하고 있을까 도넛홀조차 무언가의 증명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그 무엇의 증명도 될 수 없어서 그런걸까 도넛홀은 도넛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무이면서도 도넛홀로 존재하는데 그럼 나도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설령 아무것도 없다해도 타인이 아닌 나라는 걸까.
납작한 인삿말로 담을 수 없는 흘러넘치는 마음을 -감사이며 감상인- 너줄너줄 펼쳐놓으니 이런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건 꽤 나에 가까운 형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