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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Oct 02. 2024

생일의 탄생

1.

열두 살의 생일. 당시 단 한 명밖에 없던 친구를 초대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유일하게 따뜻했던 작은 방 문 뒤에 가까스로 끼여 앉아 생일상을 받았다. 친구는 내게 이천 원짜리 샤프를 선물로 주었다. 밥을 먹고 기대하던 케이크를 꺼냈는데 몇 입 먹다보니 딱딱한 무언가가 씹혔다. 이상하다 싶어 접시 위의 케이크를 이리저리 둘러보니 밑바닥에 크고 작은 까만 점들이 보였다. 그건 갓 피어난 것도 아닌, 오래되어 굳고 딱딱해진 곰팡이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케이크를 좋아했지만 케이크는 빵집의 쇼케이스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품에 가까웠고, 그걸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일년에 단 두 번 언니와 나의 생일뿐이었다. 친구가 없었던 나는 친구의 생일에 초대되어 케이크를 먹는 일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곰팡이가 핀 빵 부분을 걷어내고 먹고 싶었지만, 케이크에 곰팡이가 핀 것이 내 탓인 것 마냥 내게 짜증을 내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곰팡이 케이크의 여파인지 친구가 돌아간 후 엄마는 나에게 고작 친구 한 명을 초대하려고, 이천 원짜리 샤프 하나를 받으려고 생일상을 차리게 했냐며 다음부터 생일파티는 없다고 했다.

이것이 내 기억 속에 남은 유일한 나의 생일파티다.

지금까지도 생일파티는 하지 않지만, 나는 케이크만은 언제든지 먹고 싶을 때 얼마든지 사 먹는 어른이 되었다.


2.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과 아직 낯선 얼굴들(그들도 다소 얼떨떨해 보인다)과 함께 생일 케이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일 당황한 건 아마 나일 것이다.

생일 축하 노래에 둘러싸였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황한 내 얼굴을 보고 생일 아니야? 오늘 아닌가,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목소리와 생일 축하 노래의 찰나 속에 있자니,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 이 작은 이벤트에 참여해 주고 있는데 날짜가 뭐 그리 대수인가 싶다. 고개를 저으며 생일이 맞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생일이라는 건 결국 한 존재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인데, 이미 태어나 존재하고 있는 이상 태초의 그 날짜 같은 건 언제여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일이라고 해도 어차피 출생신고를 위한 형식상의 숫자일 뿐 그것도 실제로 탄생한 순간의 날짜가 아닌데, 그렇다면 서류에 별생각 없이 기재해 넣은 날짜보다 익숙한 얼굴 낯선 얼굴 뒤섞여 웃는 얼굴로 축하를 건네는 오늘이 의미로는 생일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항상 가을 참 좋은 계절의 생일자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런 좋은 날 덤으로 새로운 기념일을 얻었다. 덤으로 얻게 된 행복은, 역시 서류 기재를 위해 급하게 옥편을 뒤적여 지어진 이름 대신 내가 자신을 명명하는 이름에 선사하기로 한다.

누군가의 작은 착각이 담긴 다정함으로 새 이름과 새날들을 덤으로 얻었고, 이것은 마치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두고 스스로를 긍정해도 괜찮다는 무언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과연 이것이 생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벌써 천칭자리의 마음이 되어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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