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현진 Sep 18. 2024

지금은 없는 소년의

그 아름다운 눈을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날이었고, 우리는 한 작은 카페 안에 발이 묶여버렸다. 각자가 가져온 시집을 한 권씩 앞에 두고 있었으니 아마 책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문을 닫으려던 순간 폭설을 뚫고 당도한 우리 덕분에 같이 발이 묶여버린 카페 주인까지 세 명이서 통창 너머 온통 하얀 풍경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내게는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있다.
몇 년 후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내가 그토록 넋을 놓고 바라보던 눈은 더 이상 그때처럼 검고 또렷하게 빛나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눈빛을 잃은 그는 내게 조심히, 그러나 분명히 추파를 던지는 낡고 지루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름다움이란 뭘까, 그는 타고난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많은 것들을 얻으며 살아왔을 것이고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자신이 무얼 잃었는지,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다른 빛으로 보이게 해주었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므로 아까워하거나 아쉬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또다시 우연히 그를 마주치는 일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깊고 검은, 그토록 아름답던 눈빛을 이미 잃어버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전 07화 서울은 여전히 여름이고 저는 아직도 꿈속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