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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Sep 04. 2024

씩씩하게 살아야지 생각한다, 아무튼

너무 많은 시간과 기력과 마음을 들여 내 몸 하나-와 고양이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너무 적은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무언가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다 그만두고 텅 빈 손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통장을 한번 들여다보고 고양이 사료와 습식 파우치를 주문한 뒤, 그 고양이가 긁어 놓아 너덜너덜해진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을 읽어본다. -자그마한 나를 표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 불가사의하고 커다란 심상 우주 속에서 혹시라도 내 소원이 하늘에 닿는다면 나와 인간과 만상이 다 함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에 이르고자 한다 이것이 어떠한 종교적 정조라 한다면 그 소원이 좌절되거나 혹은 지쳐 자신과 단 하나의 영혼과 함께 완전히 영구히 어디까지나 가고자 하는 이러한 탈바꿈을 연애라 한다- 책을 덮고 운동화를 신고 어두워진 거리로 나선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발길 닿는 대로 하염없이 걷다가 상영 중인 심야 영화를 한 편 본다. 2천 원짜리 통밀가루 한 봉지를 사서 좋아하는 통밀빵을 굽는다. 며칠간 먹을 달걀을 삶는다. 두부를, 토마토를, 달걀을 장바구니에 담고 내일 만날 친구에게 주고 싶어 초코파운드를 반죽한다. 씁쓸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오븐에서 부풀고 있는 반죽을 들여다보다, 자고 일어나 부숭부숭한 얼굴로 끝없이 야옹거리며 오는 고양이의 뺨을 쓰다듬는다. 세일하는 원피스를 하나 샀고(도착한 걸 보니 옷이라기보다 싸구려 여름 이불 같았다) 한철 신을 부츠를 새로 샀다.(다음 주나 되어야 보내줄 수 있다고) 이 모든 작은 조각들이 행복인가 싶다가도 다시 통장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 싶어진다. 그래도 나는 싸구려 여름 이불 같은 원피스를 마르고 닳도록 입으며 직접 구운 빵을 먹고 머리맡에 놓인 아무 책을 들어 아무 페이지를 읽으며 지내겠지. 가끔 즐겁고 자주 암담한 채로.
아직 졸린 나를 어떻게든 깨우고 말겠다며 침대에 올라와 배를 잘근잘근 밟고 있는 고양이를 끝없이 쓰다듬으며 씩씩하게 살아야지 생각한다, 아무튼.

*본문의 시는 미야자와 겐지 고이와이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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