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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Aug 28. 2024

진공의 시간

화요일 저녁부터 연휴 이틀을 탈탈 털어 남은 인형과 가방을 만들었다. 리미티드 카드를 만들면서 그것보다 더 많은 고양이들 포토카드를 주문했다. 그 사이 부츠를 하나 결제하고 내내 고민하고 있는 가방도 들여다본다. 더운 기운을 느끼며 침대에 앉아 가방을 만들 원단을 하나하나 다림질하고 자리를 옮겨 테이블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다림질을 한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은 채 침대 옆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영상을 틀어두고 라벨을 하나씩 손바느질한다. 특별히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렇지만 혹시 내가 죽으면 울 거야? 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한 고등학생이, 정말로 그녀가 죽고 모두들 울고 있는 사이에서 슬플 때 우는 건 썰렁하잖아, 라며 끝내 울지 않는 장면이 내내 머릿속을 떠돈다. 남자 주인공이 어릴 때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고 나서 그냥 그랬다고 하는 장면도 좋았다. 후반에 등장한 배우의 얼굴이 묘하게 낯익어 찾아보니 그녀의 두 오빠 모두 배우이고 그녀는 첫째 오빠와 정말 놀랍도록 똑같은 얼굴이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의 얼굴을 화면 너머에서 본다. 반가운 공간과 익숙한 말투와 표정, 잠깐씩 지나가는 내가 잘 모르는 얼굴을 본다. 친구라고 해 주는 거야, 던 목소리를 떠올린다. 친구한테 그러면 안 되지, 라는 내게 친구 아닌데요 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바느질을 끝내고 밤거리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하염없이 걷는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 이틀이었다. 그건 어쩌면 행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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