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날

by 백현진

오늘부터 방학이라 오전 수업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휴가철이라 빠진 학생들이 많다. 새 교재를 나누어 주고 그림을 그리고 나는 지원실에서 가져온 생수를 옆에 둔 채 계속 마시고 있다. 여전히 머리가 희미한 기분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어떤 말도 전해지지 않는 기분이다. 수업을 마칠 때쯤 어린이 한 명이 친구들 몰래 과자를 한 봉지 내민다.

어린이들은 그 작은 손으로도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한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버스에는 순식간에 정신이 확 들 정도로 차갑게 에어컨이 나오고 있다. 어쩐지 오늘따라 안내 방송이 잘 들리질 않아. 폰을 주머니에 넣고 멍하니 정거장이 나오는 역 안내 방송만 보고 있다. 돌아오는 길 과일을 좀 살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내키는 게 없어 -집에 자두가 한 팩 있다. 토마토도- 잘리지 않은 김 한 봉지와 통밀가루만 사서 돌아온다. 가볍게 점심을 챙겨 먹고는 길고 긴 낮잠에 든다. 잠든 내내 고양이가 내 주위를 돌며 나를 깨우다 지쳐 보드랍고 말랑한 발로 내 턱을 긁는다. 머리가 아프다. 몸을 일으켜 고양이 파우치를 뜯어 고양이에게 먹여주고 커피를 내린다. 크림빵을 하나 꺼내 커피와 먹고 나니 갑자기 입맛이 돌아 비빔면을 하나 끓여 먹는다. 그러고 나서야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를 해치우고 보리차를 끓이고 내일 방학 특강의 준비물을 챙길 기운이 난다.

어딘가에 넣어둔 원단을 하나 더 찾고 싶었으나 그럴 기력까지는 없어 -이미 네 종류의 원단을 준비했으니 괜찮겠지-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씻고 나와 선풍기를 틀어둔 채 머리카락을 말린다. 냐-냐 거리며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배를 쓰다듬는다. 목요일은 입추다. 여전히 덥지만 바람은 벌써 가을 느낌이 난다. 난장판이었던 여름이 드디어 지나간다. 두통약을 하나 먹고 이른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멀리 수업을 하러 간다. 오전에 수업을 끝내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냥 이런 날들이다. 나쁘지 않은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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