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해방

by 백현진

저녁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어쩐지 달콤한 게 먹고 싶어, 주방 서랍을 뒤적여 취향이 아니라며 던져두었던 초코칩 쿠키를 찾아냈다. 그걸 하나 먹고 나니 시원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아침에 이미 커피를 한 잔 마셨지만 상관없으려나. 커피를 내리며 그 애가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 읽고 있던 책에서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어학연수는 6개월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6개월 정도야 눈 깜빡할 새지만, 당시에는 6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애가 떠나있는 동안 나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을 것이고 매우 지루할 것이다. 그 애가 나를 책임질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나는 그 애가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여기까지 떠올리자 기가 찼다. 나는 유구하게 타인에게 절절히 기대고 싶어 했구나, 그 사람이 한 발짝만 떼도 넘어지고 말 텐데도 나는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울 만큼 어렸는데도. 그 애 없는 6개월이 어땠었나, 생각만큼 지루하지도 생각만큼 느리게 흘러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돌아온 그 애를 만날 가는 길 내내 나는 뾰로통했다. 그 애가 선물이라며 내민 건 사탕이었다. 달짝지근하고 진득한 향이 나는.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골랐다는 그것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사탕을 먹지 않는다. 싫어한다.

그때는 6개월만 그 애가 없어도 어쩌면 좋지 걱정했었지만 이제는 6년 넘게 그 애 없이도 아무렇지 않다. 맛이 없어 던져두었던 쿠키를 발견한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라며 떠올린다. 그 애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게 계피 맛 사탕을 선물했을까. 커피를 잔에 담아 한 모금 마신다. 형편없는 쿠키 맛을 가려줄 정도의 맛이 난다. 나는 이제 계피 맛 사탕 같은 걸 받으면 고맙다고 인사한 후 알아서 처리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술에 기대지 않고도, 아이스크림에 기대지 않고도 나는 혼자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애에게 6개월은 해방이었을까?

커피 캡슐은 매달 1일에 주문한다. 이제 한 캡슐 남았고 이번 달은 이틀이 남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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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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