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가을이 왔다 생각했건만 너무 더워 눈뜨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을 켜자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 고양이는 덥지도 않은지 그 속에서 몇 시간을 내리 쿨쿨 자고 있다. 그 옆에서 그림을 그리다 슬쩍 다가가 이불 속에 있는 고양이를 발굴해 내 배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조물거린다.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나선다. 문득 들어갔다 발견한 빈티지 와인 잔을 한참 들여다보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구매를 결정하기로 한다.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나 수업 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간식을 한 봉지 사고, 무인 동물 용품 샵에서 고양이 간식도 좀 살까 했지만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느긋하게 고를 수가 없다. 무인 샵도 나처럼 성급하게 가을이 왔다 생각한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와인잔을 보러 다시 가보니 이미 문을 닫은 후다. 찬 커피나 한잔 사 갈까 하다 생각을 바꾸어 집에서 마시기로 한다. 요즘은 저렴한 커피가 많아 집에서 마시는 게 특별히 절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적어도 집에서 마시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집으로 돌아와 싫다고 발로 차고 나를 깨무는 고양이를 안아 들고 발톱 염증을 소독해준 뒤,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커피 캡슐 두 개를 내린다. 오늘도 오늘 하려고 계획했던 일의 반도 끝내지 못했다. 괜히 은행 앱에 들어가 통장에 남은 금액을 확인해 본다. 달력을 보며 이번 달이 며칠 남았는지 계산해 본다. 문득 무엇을 하고 있지, 무엇이 어떻게 될 건지 고개를 돌렸다가 동그란 고양이의 발을 본다. 꼬질꼬질한 고양이와 내내 돌아가고 있는 제습기와 에어컨, 그리다 던져놓은 아이패드, 침대 위에 어지럽게 쌓아둔 책과 스케치북. 아주 괜찮은 것도 같고 아주 엉망인 것도 같다. 내일은 멀리까지 수업을 하러가고, 돌아와서는 이불을 세탁해야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그리고 글과는 관련 없지만 시월에 작게 그림 전시를 하게 되어 이곳에도 알립니다:-)
•2025 소녀 전 10/10~12 삼청동
•나의 이런 점 느낌의 얇은 책 두 권, 2026년 소녀들 포스터 달력, 원화, 리미티드 프린팅 원화 이 정도 판매 예정입니다.
•현금, 계좌이체, 카드(민생회복 지원금 사용 가능) 결제 가능합니다.
•동물, 아기, 어린이 입장 가능하나 전시장이 계단이 많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휠체어나 유아차의 이동이 어려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