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몇 개 수업을 가고 남는 시간은 조용히 끝없이 그림을 그린다. 소파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꾸만 옹송그리게 되어 이대로 가다가는 공벌레가 될 것만 같아 고개를 들었다가 아 책상이 없구나 깨달았다. 책상이 있긴 한데 모니터와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가득 차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럼 지금껏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첩을 정리 하고 어디서 했던 거지 생각해 보니 주방 싱크대 붙어있는 작은 식탁에서 해 왔다. 에어컨이 침실에 밖에 없어 지금은 짐들만 가득 쌓여 있는 그곳 말이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는 종종 밖으로 나간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도서관과 맥도날드. 걸을 시간이 없는 날이면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를 간다. 집을 나오면 환기가 되어 좋지만 각종 소음들을 이겨내기 위해 꼭 음악을 들어야 한다. 어째서 그림을 그릴 때는 평소 듣지 않는 음악이 듣고 싶어지는 걸까. 보통 때는 공기처럼 음악을 흘리고 있어 상관없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음악이 음악으로 존재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먹는 것, 입는 것, 듣는 것이 곧 그 사람이 된다. 그럼 평소와 다른 음악을 들으며 완성한 소녀들은 그 음악을 닮아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음악을 듣지 않고 그린 소녀들과는 다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꽤 마음에 든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처음에는 대략적인 윤곽만 잡은 채 그리기 시작 하는데 몇 개인가 선을 긋다 보면 내 생각대로 흘러간다기보다 내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기분이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 모양을 했을지 전혀 알지 못했던 소녀가 마치 본인이 직접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매만지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액세서리들을 고른 것처럼 완성된다. 배경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해서 그린다기보다 흰 종이를 보고 있으면 서서히 상이 나타나는 기분이다. 나는 그걸 발굴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소녀들은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소녀들을 매일 오래도록 바라본다. 나는 나의 소녀들이 꽤 마음에 든다. 나는 나의 결과물들을 모두 사랑한다. 맞아, 나는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 그리고 이건 꽤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