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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맹이여행자 Apr 03. 2019

완벽한 휴가

#크로아티아, 풀라 : 무모한 선택이 이끈 새로운 행복


그녀는 술에 취해있었고 어설픈 영어를 구사했지만 눈빛만은 확신에 차 있었다. 


“풀라에는 잠깐 휴가를 보내려고 왔었어. 그리고 그를 만났지.

그는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이 집에 오래 머물러도 좋다고 했어.

어릴 적 화가가 꿈이었던 나는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고, 어느새 14년이나 지나버린 거야!”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공간


풀라의 호스트 마르코는 저녁을 먹고 나서 이웃집에서 열리는 악기 연주회에 가자고 했다.

딱히 흥미는 없었지만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닌지라 그를 따라나섰다.


그곳은 한 부부의 집이자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었다. 

플루트를 이용한 클래식 연주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파티에서 술에 취해 상기된 얼굴을 한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이끈 곳


“확신은 없었지만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어. 나는 이탈리안이라 영어를 잘하지 못해. 

하지만 오늘 네가 꼭 이걸 알고 갔으면 좋겠어. 

꿈이 있다면 문을 두드려봐. 어떻게든 길이 생길 거야.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가득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혹시나 내가 서툰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문을 두드리는 시늉까지 하며 무언가 필사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왜 여행을 나온 거니?”


“인생을 바꾸어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내 이야기를 끝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브라보’부터 외쳤다.


“난 너를 완전히 이해해. 

다시 한번 기억해.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를 봐. 난 휴가를 보내려고 풀라에 왔을 뿐인데 이건 내 직업이 되었지.
아, 물론 이제 ‘진짜 휴가’가 필요하긴 해!”


그녀의 눈에 비친 백열전구가 반짝거린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마냥 알코올에 취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행복, 어쩌면 저게 바로 꿈을 이룬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표정일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 스승님이 남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번 더 놀랐다.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스승, 아니, 이제는 그녀의 남편인 그들의 집을 나서면서 

왠지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녀는 무모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잠깐 휴가를 온 곳에 눌러살게 되다니.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벽을 치는 행위조차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탄생하던 요상한 공간


거실에서는 베이스, 기타, 정체 모를 악기들의 소리가 조화롭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벽을 치는 행위조차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여기는 참 이상한 곳이야.
조금은 대책 없이 살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무모하게 도전해봐도 된다는 용기를 주는 곳.’

풀라 근교 도시 로빈에서 만난 일몰. 미래의 내 인생도 저 태양처럼 밝게 떠오르기를.


어쩌면 내 인생의 불협화음 같았던 이 기나긴 여행도 새로운 기회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그 무모한 선택이 새로운 행복으로 이끌었다고 외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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