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 언젠가 나도 너처럼 빛날 수 있겠지
파리의 여름밤, 나와 세드릭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곧 있으면 마법이 펼쳐질 거라며 기대하라는 그의 말에 멍하니 에펠탑을 바라보면서.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켰다. 동시에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탄성을 내지르며 너도나도 카메라를 든다. 물론 나도 동참했다.
항상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빛났을 텐데도 에펠탑 주위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갑자기 에펠탑이 부러워진다.
“세드릭, 에펠탑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 같아. 나도 에펠탑처럼 빛나는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영락없이 백수잖아. 5년간 회사생활을 하고 나면 내세울 것이 하나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가진 기술은 가만히 앉아서 타자 치는 것 밖에 없더라. 당장 새롭게 뭔가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잘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초라해져.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는 큰 눈을 더 똥그랗게 뜨며 나에게 반문했다.
"네가 싫다고? 난 지금까지 수많은 카우치 서퍼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대단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지만 세계일주라는 것은 그냥 길게 여행을 하는 것뿐이잖아.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서 정말 흔한걸."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는 걸 보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나 보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가끔씩 돌아가면 무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갑자기 세드릭이 정적을 깨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그의 손 끝이 에펠탑을 가리킨다.
“영은, 너 에펠탑이 좋다고 했지? 과거의 파리 사람들은 에펠탑을 흉측하다고 싫어했던 거 알아?”
“정말?”
“응. 철골로 된 구조물이 파리의 정경을 망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도 에펠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 물론 발이 달린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기는 했겠지만.”
피식. 갑작스레 던진 그의 싱거운 농담에 눈을 흘겼다.
세드릭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어때? 에펠탑은 파리를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멋진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계속해서 네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거야. 그러면 자연히 잘하는 것도 생기고 스스로 빛나 보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참, 그렇다고 네가 지금 흉측하다는 건 아니야!”
에펠탑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태어난 날부터 아름다웠을 것 같던 에펠탑이 한 때는 흉측하다고 손가락질받았다니.
지금의 빛을 내기까지 너도 꽤나 고단했구나.
언젠가 내가 빛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꼭 너를 떠올릴게.
에펠탑이 되고 싶었던 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