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풀라 : 무모한 선택이 이끈 새로운 행복
그녀는 술에 취해있었고 어설픈 영어를 구사했지만 눈빛만은 확신에 차 있었다.
“풀라에는 잠깐 휴가를 보내려고 왔었어. 그리고 그를 만났지.
그는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이 집에 오래 머물러도 좋다고 했어.
어릴 적 화가가 꿈이었던 나는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고, 어느새 14년이나 지나버린 거야!”
풀라의 호스트 마르코는 저녁을 먹고 나서 이웃집에서 열리는 악기 연주회에 가자고 했다.
딱히 흥미는 없었지만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닌지라 그를 따라나섰다.
그곳은 한 부부의 집이자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었다.
플루트를 이용한 클래식 연주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파티에서 술에 취해 상기된 얼굴을 한 그녀를 만난 것이다.
“확신은 없었지만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어. 나는 이탈리안이라 영어를 잘하지 못해.
하지만 오늘 네가 꼭 이걸 알고 갔으면 좋겠어.
꿈이 있다면 문을 두드려봐. 어떻게든 길이 생길 거야.”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가득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혹시나 내가 서툰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문을 두드리는 시늉까지 하며 무언가 필사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왜 여행을 나온 거니?”
“인생을 바꾸어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내 이야기를 끝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브라보’부터 외쳤다.
“난 너를 완전히 이해해.
다시 한번 기억해.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를 봐. 난 휴가를 보내려고 풀라에 왔을 뿐인데 이건 내 직업이 되었지.
아, 물론 이제 ‘진짜 휴가’가 필요하긴 해!”
그녀의 눈에 비친 백열전구가 반짝거린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마냥 알코올에 취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행복, 어쩌면 저게 바로 꿈을 이룬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표정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스승, 아니, 이제는 그녀의 남편인 그들의 집을 나서면서
왠지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녀는 무모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잠깐 휴가를 온 곳에 눌러살게 되다니.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거실에서는 베이스, 기타, 정체 모를 악기들의 소리가 조화롭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벽을 치는 행위조차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여기는 참 이상한 곳이야.
조금은 대책 없이 살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무모하게 도전해봐도 된다는 용기를 주는 곳.’
어쩌면 내 인생의 불협화음 같았던 이 기나긴 여행도 새로운 기회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그 무모한 선택이 새로운 행복으로 이끌었다고 외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