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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맹이여행자 Apr 10. 2019

에펠탑처럼 빛나는

#프랑스, 파리 : 언젠가 나도 너처럼 빛날 수 있겠지


에펠탑이 보이는 한적한 공원


파리의 여름밤, 나와 세드릭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곧 있으면 마법이 펼쳐질 거라며 기대하라는 그의 말에 멍하니 에펠탑을 바라보면서.


매일 밤 파리에서는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나는 마법의 시간이 다가온다.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켰다. 동시에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탄성을 내지르며 너도나도 카메라를 든다. 물론 나도 동참했다.


항상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빛났을 텐데도 에펠탑 주위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갑자기 에펠탑이 부러워진다.


“세드릭, 에펠탑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 같아. 나도 에펠탑처럼 빛나는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영락없이 백수잖아. 5년간 회사생활을 하고 나면 내세울 것이 하나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가진 기술은 가만히 앉아서 타자 치는 것 밖에 없더라. 당장 새롭게 뭔가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잘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초라해져.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어딜 가도 그림 같은 풍경이었던 파리


그는 큰 눈을 더 똥그랗게 뜨며 나에게 반문했다.


"네가 싫다고? 난 지금까지 수많은 카우치 서퍼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대단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지만 세계일주라는 것은 그냥 길게 여행을 하는 것뿐이잖아.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서 정말 흔한걸."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는 걸 보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나 보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가끔씩 돌아가면 무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 세드릭의 집. 파리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를 다시 보았다.


갑자기 세드릭이 정적을 깨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그의 손 끝이 에펠탑을 가리킨다.


“영은, 너 에펠탑이 좋다고 했지? 과거의 파리 사람들은 에펠탑을 흉측하다고 싫어했던 거 알아?”

“정말?”

“응. 철골로 된 구조물이 파리의 정경을 망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도 에펠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 물론 발이 달린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기는 했겠지만.”


피식. 갑작스레 던진 그의 싱거운 농담에 눈을 흘겼다.

세드릭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파리에서는 스냅 작가 친구를 만난 덕분에 인생 사진을 잔뜩 건졌다.


“지금은 어때? 에펠탑은 파리를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멋진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계속해서 네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거야. 그러면 자연히 잘하는 것도 생기고 스스로 빛나 보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참, 그렇다고 네가 지금 흉측하다는 건 아니야!”


에펠탑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태어난 날부터 아름다웠을 것 같던 에펠탑이 한 때는 흉측하다고 손가락질받았다니.
지금의 빛을 내기까지 너도 꽤나 고단했구나.


에펠탑 안녕. 언젠가 다시 너를 찾는 날은 더욱 성장해있기를.


언젠가 내가 빛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꼭 너를 떠올릴게.
에펠탑이 되고 싶었던 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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