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9일(화) 한국 시각 7시 48분/블라디보스토크 시각 8시 48분
보쉬 세탁기가 처음이라 사흘째지만 여전히 감을 못 잡겠다. 일단 돌려보는데 저 빨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세탁기는 시간을 맞춰놓으면 알아서 빨래하고 헹구고 탈수가 이루어지는데 저건 그건지 아닌지... 다이얼을 이렇게도 돌려보고 저렇게도 돌려보며 지난 이틀 동안 빨래를 하긴 했는데. 지금 세탁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돌지 한번 지켜봐야지.
여긴 블라디보스토크 데르자비나 거리, “린콤”아파트 3층 11호다. 가구도 없고 살림집처럼 살림살이가 갖춰져 있지 않아 썰렁하고 휑하다. 그래도 앞으로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지낼 집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나름 고급에 속하는 레지던스형 아파트이다. 한국으로 치면 시내 중심가에 외국인들 장기 임대하는 호텔과 아파트의 중간쯤인 공간이라고나 할까? 제대로 된 살림살이로 채워지면 꽤 쾌적하고 깔끔한 곳이다. 지금은 싱크대 상부장이고 하부장이고 텅텅 비어있지만...
인천에서 12시 55분 출발 제주항공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사실 43만 원이나 지불했으니 저가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이라 제시간에 출발할까 진작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지 십여 분 늦게, 그 정도면 양호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륙했다. 그리고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약간 혼란스러운 사이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날씨가 흐리다고 했는데 이륙하기 전부터 창밖이 구름으로 쌓여있고 회색빛이다. 안개처럼 물방울이 날리는 듯했다.
국제공항이라고 하지만 지방 작은 공항 같다. 초라하고 허름하다. 입국 심사하는데 사람들로 가득하다. 모두 인천에서 제주항공을 타고 온 한국인들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거의 없다. 러시아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띌 뿐. 한국 지방 도시 같다. 블라디보스토크가 한국인들로 넘쳐난다는 말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심사가 늦다. 한 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남편이 준비해 온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운전사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생각으로 티격태격하면서 왔다.
창밖은 얼마 전 본 일본 오사카, 교토와는 딴판. 당연한 얘기겠지만 거리만큼 다른 풍경에 좀 낯설었다. 날씨마저 그래서 더 스산해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차들은 거의 일본에서 넘어온 중고차라고 했는데 정말 다 일본차다. 겉보기에 깔끔한 차도 있지만 폐차장에서나 볼 법한 차들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다.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중력의 힘을 거스르며 앞으로 힘겹게 달리는 듯했다.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런 차들이 뿜어내는 불쾌한 냄새 때문에 저절로 눈을 찡그렸다.
한참을 달려, 한 40분쯤, 일단 장을 보기로 했다. 해산물이 싱싱하다는 마켓에 갔는데 6시면 문을 닫는단다. 다시 차를 돌려 집 근처 레미라는 마켓에 갔다. 생각보다 크고 물건이 많았다. 백가지도 넘을 것 같은 치즈, 햄 종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눈에 익숙한 것들로 몇 가지 골랐다. 김치도 샀다. 양배추 절임인 듯 보이는 샐러드도 사고. 식료품은 진짜 쌌다. 햄이며 치즈, 한국에서라면 만 원을 훌쩍 넘을 것들이 모두 오천 원 미만이다. 근데 그릇이며 걸레 등 공산품이 별로 없다. 부엌 살림살이를 좀 더 사야 하는데 지금까지 못 사고 있다. 먹을거리가 저렴한 게 참 좋다. 맛있는 걸 싼 값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건 무조건 좋은 거다. 살 만큼 사고 집으로 왔다. 듣던 바 집이 꽤 널찍하다.
우선 짐을 풀고 급한 대로 빵이랑 치즈, 햄 썰어 저녁상을 차렸다. 아침에 집 앞에서 샀다는 케밥이 남아서 같이 먹었다. 삼천 원 정도 주고 샀다는데 케밥이 고봉김밥 특대 사이즈보다 크다. 세 조각으로 나눠 먹었는데 그 양으로도 배가 부르다. 진짜 푸짐하다.
반나절 경험으로, 블라디보스토크는, 특히 거리를 보면 한국보다 참 많이 못 산다는 생각. 도로 사정이며 골목골목 풍경이 너무 초라했다. 그리고 공격적인 운전, 매연, 변덕스러운 날씨, 저렴한 물가, 푸짐한 먹거리,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 특히 운전기사 아저씨(면세점에서 사 온 담배 한 보루 선물로). 아직은 모르겠다. 살만한 곳인지 어떤지...
오사카나 몬터레이처럼 따뜻하지도 날씨가 화창하지도 않아 쓸쓸한 마음이 더 크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