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비령 Mar 15. 2023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인생이라는 파도에 맞서 싸울 용기를 주는 시

가끔 어떤 특정 장소에 가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내게 이 시는 시들지 않는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 가면 떠오르는 노래였다.

바로 함석헌 시인의 <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이다.


몸서리 치게 외로움에 사무치던 날에

홀로 쓸쓸히 대학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눈에 띈 큰 비석판에 적힌 시 한 편.



바로 함석헌 시인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삶의 목적이나 방향성을 잃고 헤매였던 시기였다.

미친듯이 공부해서 입학한 대학이란 곳에 회의를 느끼고

과연 내가 이 전공을 평생 좋아하며 '이상적인 인생의 목적'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름 삶의 망망대해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그런 것들은 다 소용없으니, 그저 너에게 귀하고 소중한 '단 한 사람'을 가져라."라고

누군가 조언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위로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늘 이 곳에 다시 찾을 때면

지금 내 곁에는 '그 사람이 있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내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있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아깝지 않다고,

그래서 살아오면서 큰 성취는 이루지 못했더라 해도,

지지부진한 지루한 모든 일상의 단조로움에도,

또 다른 아침을 꿈꿀 수 있고 살아갈 힘이 생겼다는 걸 느낀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단 한 사람쯤 있을 것이다.

혹은 두 사람, 세 사람... 어쩌면 열 사람, 백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엄청난 어려움이나 시련이 온다해도

그 사람들 덕분에 살아갈 호랑이 기운을 얻을 수 있고,

하루의 마무리를 행복한 미소로 지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것 아닐까.


우리는 이미 넘치도록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인생이라는 험난한 파도 속에서도

용기 있게 헤엄치고 버텨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설화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