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분리가 주는 자유
집순이의 집 탈출 시도
나는 집순이이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에 갇혀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보다는 원래 집밖에 나가는 걸 꺼려한다. 아마 책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mbti가 i(내면형)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집안에서의 안정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ㅡ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ㅡ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집순이인 나조차도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집밖의 어딘가, 맘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캠핑도 가보고, 산책도 나가고 카페도 가고 했는데, 오늘 우연히 내가 딱 원하던 공간을 찾았다.
바로 집근처 스터디카페. 사실 80년대생인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공립도서관이나 독서실 정도가 다였는데 요즘은 프리미엄 스터디카페, 소호 사무실, 공유 오피스 등 쾌적하고 전문적인 학습(업무)의 공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공간들은 학생이나. 사업가 등 특정 직군. 연령대가 전유하는 특별한 공간일 거라 생각해서, 간판을 보면서도 기웃거리다가 발을 돌리기 일쑤였다.
오늘은 왠지 조용히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없을까 찾다가 갑작스레 들어와버렸다.
가방 안에 든건 소설책, 그리고 다이어리, 펜, 뜨개바늘, 털실이 전부였다.
뭐 거창한 고시공부를 하러온 것도 아니지만, 공부라는게 시험을 위한 암기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당당히 털실을 꺼내 뜨개질을 시작했다. 물론 칸막이가 있어 내가 뜨개질하는 줄은 잘 모를 것이다.
처음에는 무얼 해야할지 몰라 멍하니 불빛을 보다가, 오랜만에 집안에서 벗어난 낯선 공간에서 멍하니 앉아있으니 머릿속이 청소되는 느낌이다.
하얗고 깨끗한 칸막이에, led전등의 환한 불빛, 그리고 중후한 어두운 색의 원목 책상, 허리가 편한 유명 브랜드의 의자까지.
내 방만 치우고 설거지, 빨래, 청소만 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이렇게 생각도 정리해야지 싶다.
내 머릿속이 지금 어떤 잡념으로 가득찼는지, 필요없거나 정리가 필요한 생각은 무엇인지. 다시 채워야 할 생각은 무엇인지.
아니 그냥 비어있는 채로 생각을 아예 없애고 깨끗한 백지상태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생각의 정리가 단번에 되는 공간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공간의 분리'에 대한 중요성이 느껴졌다. 집에서 업무와 휴식. 취미생활까지 다 하려다보니, 모든것이 얽히고 섥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루틴이 무너졌다. 자꾸만 눈에 띄는 집안일들과 미뤄두었던 일들이 떠오르니, 현재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집은 너무나 평온하고 익숙한 나만의 은신처이지만
가끔은 익숙한 공간에서 나를 분리시켜 낯설게하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3000원을 지불하고, 나는 2시간 동안 멍때릴 자유를 얻었다. 여기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뜨개질을 하고 가끔 진짜 인생공부도 하면서 자유인이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