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하늘은 드높고, 티없이 맑고 깨끗하다. 푸르르고 가이 없이 이어진다. 가끔 뭉게뭉게 흰구름이 때로는 목화솜처럼, 때로는 양털처럼, 때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하늘에 피어나있다. 하늘을 배경화면 삼아 누군가 세밀한 손놀림으로 붓질을 해놓은 듯하다. 또 어찌보면 하늘이 구름을 거느리고 머나먼 여정을 떠난듯, 늘 그자리에 있지만, 늘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다.
세계 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80일 간의 세계일주'같은 책을 읽으며, 온 세계를 다 누비고 다닌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긴긴 여행을 끝내고서 발견한 것은 "세계 어디든 비슷하지만, 집에서 바라본 하늘의 풍경이 더욱 다채로웠다"는 문장으로 소회를 밝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하늘의 모습이, 사실은 가장 풍요롭고 신비로운 풍경이리라.
가을은 음악을 듣기에도 참 좋은 계절이다. 느끼한 재즈부터 잔잔한 피아노 연주까지. 때로는 통기타 반주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더해진 뜻모를 팝송 한 구절도 좋으리라. 거기에 진하게 갓 내린 커피 한 잔에 달콤한 디저트가 함께한다면, 더이상 무얼 바랄까.
가끔 생각해 보는 것은 '왜 한국에는 티타임 문화가 없을까?'라는 점이다. 이런 멋진 가을 하늘 아래 다같이 옹기종기 모여 고요하고, 잔잔하게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며 사람이 풍경처럼 있으면 좋으련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풍경'이란 시가 떠오른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 가을은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황금빛 물결 넘치는 들판부터, 제 힘을 다해 생명을 마감하는 갖가지 색깔의 나뭇잎들, 그리고 드높아진 하늘과, 그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아름답고 그윽한 눈빛까지. 그런 순간에는 혼자여도 좋고. 혼자라서 더욱 좋다. 둘이거나 셋이어도 나쁠게 없으리라.
하늘을 바라보는 텅빈 마음과 심연의 감성을 안주삼아, 오늘도 나는 하늘을 바라다 본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되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