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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Sep 08. 2022

시련을 대하는 착한 아이의 자세

초등학교 1학년. 여덟 살의 어린이는 요즘 사회 생활을 하느라 한참 지쳐있다.

물론 유치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매일같은 집단 생활과 규칙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배워가며

'학생'역할을 학습 중인 아들 녀석이 너무 대견하다.

그런데, 녀석이 요즘 자꾸 여러가지 관계의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전형적인 내향형인 나를 닮아서인지, 내 아이 역시, 남자 아이답지 않게,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다.

게다가 직관적인 통찰력이 뛰어나며, 세심하고 예리한 관찰력을 지녔다.

그런 아이라서인지, 내 아이이기 때문인지,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어서인지,

학교 생활을 처음 하는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의 입장에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 아이가 한 명의 아이와 세 번에 걸쳐 대립을 겪은 일이 발생했다.

상황은 모두 제 각각이고, 실제 그 상황을 지켜보지 못했기에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관계의 시소 속에서 당하는 입장에 속한 적이 많았던 내 아이는,

상대방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는 일이 잦아졌다.


아직은 다행이도, 엄마인 나는, 내 아이의 숨 소리만 들어도, 눈빛만 봐도 아이의 마음이 눈에 보인다.

결국에는 아이를 앉혀놓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그쳐 묻고 말았다.

또, 같은 녀석과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아이를 속상하게 한 그 녀석이 너무 미워서, 다짜고짜 아이를 나무랐다.

너는 왜 싫은 걸 싫다고 얘기도 못하느냐고. 바보냐고.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또다시 입을 다물고 만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착하고 말이 없는 아이는 장난끼 많고 시끄러운 아이들보다 더, 위험하다.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모범생처럼 참기만 잘 하는 아이들이, 언제고 폭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끌벅적하고 매일 혼나는 녀석들은 자신들의 힘듦을 쌓아두지 않고 스스럼 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착하고 말 없는 녀석들의 표정에 우울함이 스쳐갈 때, 나는 불안하다. 그 조용한 인내 속에 얼마만큼의 힘듦과 좌절이 쌓여있는지 짐작할 수 없기에.


그래서 조용하고 차분한 내 아이가, 늘 불안했었다.

이 녀석이 다 괜찮은 척하면서, 무언가 혼자만의 슬픔을 쌓아두고 있지 않을까 해서.

나 역시 어린 시절, 굉장히 조용하고 얌전했었다.

거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모범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지만,

더 어렸을 때 방황하고 사고치지 않은 걸 후회한 적이 많았다.


어른이 된 뒤로 방황하고, 크게 사고치며 인생이라는 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적이 많아지면서,

보다 단단하고 강인한 어른이 되지 못했음에 자책도 많이 했다.


그래서, 가급적 내 아이는 소심하지 않게, 말썽도 종종 피우면서,

영원히 철 없는 개구쟁이로 자라길 바랐다.

그런데 이 녀석이 여덟 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꽤나 잘 참아내고, 힘든 상황도 혼자 잘 감내해내는 걸 보면서,

내 아이가 기특하다는 생각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이가 커 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모든 시련을 피해갈 수는 없겠으나,

그 시련을 대함에 있어, 좀더 아이처럼, 떼도 쓰고 힘든 티도 팍팍 내면서,

그렇게 시련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담담한 사람으로 커 갔으면 좋겠다.


사회 생활에서 친구들과 부딪힘 속에서 겪는 갈등 속에서,

착한 아이로 말 없이 참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엉엉 울고, 바득바득 싸우기도 하면서,

그냥 갈등 자체를 흘려버리고, '그 따위 것'하면서 훌훌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담백하게 웃으며 걸었으면 좋겠다.

결국 세상은 웃는 자의 편이니 말이다.


오늘도 착해빠진 아들 녀석의 잠든 고운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가 걸어갈 모든 날들에, 시련이 없기를, 부디 평안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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