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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Nov 06. 2022

슬픔을 위로하는 시 - 기다려라

아이가 면접을 간 날이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뒹굴고 뒤집고 이불 걷어차고 엄마 얼굴에 발을 올려놓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그 녀석과 같이 잠들면 늦잠을 잘 정도로 잘 자는데, 유독 혼자 있을 땐 다시 새벽에 잠을 깨곤 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의 슬픔에 감히 위로의 말도 못 네겠는 요즘이다.

스무 살, 서른 살 한창 예쁘게 꽃 피웠을 나이에, 그토록 허무하게, 처참하게 죽어가던 그 영혼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죽는다니 듣기만 해도 공포스럽고, 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

어떤 재난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던 장면이 내가 사는 이곳,여기에서 일어났다니..


주말에 아울렛에 잠깐 갔었는데,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서로를 조심하며 비켜가는 분위기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고,

인파가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무언가 공포스러움이 밀려와서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타인의 고통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큰 충격이었고, 우리네 일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타인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고, 우리의 이웃이었다.

손 쓸 수도 없이 속절없이 꺽여간 젊은 슬픔들의 얼굴을 잊기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세월호 때도 그랬지만, 지금 이 아픔도 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왜 비극은 죄 없는 영혼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걸까.

정작 잘못한 사람들은 죄의식도 없이 떵떵거리며 잘만 살아가는데 말이다.


이런 순간에 힘겨워하고 계신 많은 분들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시 한 편을 옮겨 적어본다.


#출처: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제목: 기다려라.

저자: 골웨이 키넬


기다려라, 지금은.

모든 것을 불신해도 좋다, 꼭 그래야만 한다면.

하지만 시간을 믿으라. 지금까지 시간이 너를

모든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는가.

너는 개인적인 일들에 다시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니,

너의 머리카락에도,

고통에도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니,

계절 지나 핀 꽃이 다시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쓰던 장갑이 다시금 정겨워질 것이다.

장갑으로 하여금 다른 손을 찾게 만드는 것은

그 장갑이 가진 기억들.

연인들의 외로움도 그것과 같다.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빚어내는

거대한 공허감은

언제나 채워지기를 원하니,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망이

오히려 옛사랑에 충실한 것.


기다려라.

너무 일찍 떠나려 하지 말라.

너는 지쳤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쳤다.

하지만 누구도 완전히 지치진 않았다.

다만 잠시 기다리며 들어 보라.

머리카락에 깃든 음악을

고통 안에 숨 쉬는 음악을

우리의 모든 사랑을 실처럼 다시 잇는 음악을

거기 있으면서 들어 보라.

지금이 무엇보다도 너의 온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피리 소리를 들을 유일한 순간이니.

슬픔으로 연습하고,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 덧. 이 시는 대학에서 저자가 문학을 강의할 때, 실연의 상처로 자살하겠다며 찾아온 제자에게 써 준 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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