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육아 삼만리
책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재미를 찾아주려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진부한 말일 수 있으나 경험에 밑바탕 된 관용어는 늘 삶에 있어 진실한 교훈을 준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자녀 교육에 성공하신 선배 교사분들을 많이 뵈었다.
독일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 유학을 보낸 대학생 자녀 뒷바라지를 하는 50대 선배님들,
승마나 수영,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등 예체능에 두각을 나타내는 청소년 자녀를 뒷바라지 중인 동료 교사들.
좋은 대학에 성공적인 진학을 시키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한 자녀의 소식을 알리며, 비로소 은퇴를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까지.....
나 역시 내 자식은 부모를 닮아 적어도 중간은 갈 줄 알고 오만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설마 하위권에서 뒤떨어지진 않겠지,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할 때 되면 하겠지..
공부보다는 건강한 체력과 재미있는 취미생활, 행복한 인생이 중요하니까.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직접, 간접적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학업에 대한 강요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가정 보육의 시간이 길어지고,
엄마인 나는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내 자식은 방치되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코 찔찔이로 첫 입학을 하고 한 학기를 무사히 보낸 녀석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
'잘하고 있겠지.'라고 막연히 믿고만 있었는데,
두 번째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수학 등 과목에서 따라가는 속도가 느리다.", "숙제장을 안 가져온 날이 몇 번 있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꽤나 충격을 받았다.
독서에 대한 흥미도는 또 어떠한가?
사실 '책 육아'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시키리라 다짐했었고,
유수의 출판사의 다양한 전집들을 '서재방'에 가득 구비해두며
'독서 육아 소모임'까지 운영할 만큼 나 나름대로는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노력과 정성과는 무관하게 아이는 점점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다.
너무 많고 흔해 빠져 버린 '책' 무덤 속에서 그 소중함에 무심해져 갔다고나 할까.
사실 나의 어릴 적을 되돌아보면,
읽을 책이 없고 새로운 책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사촌 오빠의 집에 가면 숨어서 책을 읽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최신 문물을 활용한 영상 자료를 통한 교육에 대해 불신해왔고,
책 말고 다른 매체들은 가급적 멀리하는 게 좋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수학, 영어, 과학 등의 다양한 과목에서 독서보다 빠른 지름길인
영상 교육으로 일단 진도를 따라잡고 공부 습관을 키워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요즘 우리 아이는 저녁을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를 한 두 편 본 이후로는
'***'이라는 학습용 아이패드를 켜고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영상으로 학습을 한다.
파닉스나 스토리텔링 수학, 과학 실험 영상, 세계사와 여행을 접목한 영상 등을 다 본 뒤로는
심심한지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질 못한다.
그러면 나는 그제야 비로소, 책을 권할 명목이 생긴다.
예전처럼 부모가 고른 책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골라오도록 한다.
아이는 내 예상과 너무나 다른 책들을 골라오고, 소리 내어 장난치듯 읽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끝페이지까지 다 읽지는 못 하고, 낭독하다 지쳐서 그만 읽는다고 하거나
읽었던 부분만 계속 보고 있거나 다른 책을 읽겠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하다.
나름 독서교육 전문가라고 자부했는데, 내 아이의 독서 육아를 함에 있어
이리도 자신감이 없어질 줄이야.
어른의 책 읽기와 아이의 책 읽기는 너무나 다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그림책 읽기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오늘은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이 책은 왜 싫어? 그림을 따라 그려볼까?"
재미있게, 스스로 책 읽게 하기.
아마도 길고 긴 장정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