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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04. 2022

우리의 생이별이 의미 있으려면

남편은 사업을 하는 도중 작년에 큰 어려움을 겪고 급하게 사업을 접게 되었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컸기에 젊은 시절 오랜 시간 유학했던 프랑스에서 잠시나마 힘들었던 일을 잊고 살다 오길 원했다. 


빨리 나올 수 있는 학생비자를 준비해서 프랑스에서 남편 혼자 산 지 벌써 6개월에 접어든다. 남편은 몇 일째 장염으로 인해서 오렌지 주스만 마셔도 설사하는 상태가 되었는데, 페이스톡으로 확인한 그의 얼굴은 정말 반쪽이 되어 있었다. 


잘못 먹은 게 없냐고 채근해 보아도 특별한 걸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하고만 통화하면 자꾸 배가 아파져 온다고 한다. 


'아... 스트레스로 인한 몸살이구나'  

'내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압박감을 줘서 그의 몸이 병이 났구나'



그의 얼굴을 보러 지난 설 연휴에 휴가를 내어 내가 프랑스에 다녀간 이후, 남편은 나와 함께 한 프랑스에서의 모든 시간이 좋았다며 프랑스에서 살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었다. 


기대 이상이었던 도시, 디종


나는 그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프랑스 취업을 급하게 알아보았으나, 기술직도 아닌 행정직으로 한 회사에서의 10년의 경력은 프랑스에서 반길 만한 커리어가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모든 회사가 짠 것처럼 '영어, 프랑스어 능통자'를 기본 조건으로 찾고 있었다.


그가 할만한 사업을 파리에서 론칭하고 집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최소 7-8억 정도는 있어야 했는데, 수중에 가진 돈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업과 취업을 포기하자고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는 프랑스에 간 이후, 나에게 어떤 '의견'을 낸 적이 없다. 학생 신분으로 머나먼 땅에서 숨만 쉬어도 월 200~300씩 쓰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서 내게 뭔가를 바라거나 제안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거기서 시간만 보내고 오면 아까우니까 뭐 할 게 없나 알아보고 배우고 오라"고 했고, 안 그래도 의욕 없는 그는 심리적 압박만 느끼다가 몸까지 병이 난 듯했다.




나하고만 통화하면 배가 아프다는 그에게 나는 불현듯 이렇게 말했다.

"여보, 거기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뭐 배우지 않아도 되고, 돈을 벌지 않아도 돼. 이왕 간 거, 프랑스에서 신세 진 여보 친구들 미슐랭 붙은 식당 데려가서 근사하게 밥도 사 주고, 차 렌트해서 남부 해양 도시도 놀러 가서 스포츠도 하고 그냥 돈 쓰다가 와. 여보한테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한동안 말을 잃더니 "괜찮아"라고 짧게 답하는 그의 답변에서 편안한 웃음이 묻어났다. 

'그냥 쉼이 필요했던 건데... 말은 괜찮다고 하면서 돈만 쓰고 있다고 내가 무언의 면박을 줬구나'라며 괴로웠을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남편이 옆에 없었던 5개월간, 나름의 고독과 마음고생에 퇴사 욕구가 하늘까지 치솟았던 나는, 내 힘듦에 대해 늘 남편에게 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워딩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행간에 숨겨진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남편이 그간 얼마나 자책했을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사실 나의 문제는 지출이 많아진 것이나 남편이 옆에 없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고, 인생이 목적 없이 흘러가고 있음에 대한 통렬한 자각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냥 나 스스로의 문제였다.


끝없이 핑계 댈 희생양을 찾으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못된 인간의 본능.


남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그렇게 얘기하니 마음이 거짓말처럼 홀가분해졌다.

남편이 프랑스에 간 목적은 '쉼'임을, '휴식'임을 잊지 말고 그 목적을 꼭 이루고 올 수 있게 격려하려고 한다.

다시는 통화하며 "오늘은 뭐 했어?"라고 묻지 말자.


아직은 우리 인생의 걱정과 염려들이 '소소함'에 감사하며. 

그가 내 남편임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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