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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07. 2022

시댁 가는 딸을 반기는 친정 엄마

우리 남편이 휴식차(?) 프랑스에 올 1월에 갔으니까 나는 이제 6개월째 한국에 혼자 남아 열심히 돈벌어서 남편 생활비를 대 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 남편은 무슨 복이 많아 나 같은 마누라를 얻었는지)


남편이 프랑스에 최소 1년 이상 머물 계획을 갖게 되자, 올 3월에 전세가 만료되는 우리 집을 정리하고 작년 가을에 아빠가 떠난 후 엄마 혼자 남게 된 친정집에 당분간 머물기로 하고 친정에 들어갔다.


나는 아빠의 빈 자리로 인해 외로움과 적적함을 느낄 엄마와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필요할 거라 여겼는데, 막상 지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일단, 엄마는 바쁘다. 아빠와의 몇 십년 불화도 신앙의 힘으로 견딘 우리 엄마는 교회로 인한 대외 활동과 그로 인해 맺어진 인간 관계 폭이 넓어 생각보다 분주했다. 매일 외출할 일이 생겼고, 권사님 집사님들과의 전화 통화도 많았다. 그러니까, 외로울 틈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요양병원에 있던 아빠 면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금지된 이후, 엄마는 우울증이 올 정도로 극심히 외로워하고 허전해 하셨었다. 1년 정도 그 시기를 겪으신게 마치 아빠의 임종에 앞서 예방접종을 맞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게 생각보다 엄마는 잘 지내고 계셨던 터라, 내가 친정에 들어간 것이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난 혼자가 아니라, 이쁜 혹부리-중형견 1마리-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쁜 내 새끼. 집에선 보통 저렇게 오후 2시까지 쭉 잔다. 별명이 '소파견'



강아지를 원래 무서워했던 우리 엄마는 소형견도 아닌 중형견을 돌봐야 하는 것에 무척 부담을 느끼셨다. 다행히 우리 애가 얌전한 편이라 집에서 말썽을 안 부려서 예뻐하셨지만, 강아지 밥 줄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와야 하는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시게 되었다.


답답허다....


반면 나는 친정에 오니까 처녀 때로 돌아간 것마냥 자유를 누렸다. 엄마가 끼니 때마다 새로 찌개 끓여 밥 해 주고, 빨래 해 주고, 청소 해 주고... 온갖 집안일에서 해방되니 이건 그야말로 '야호~~'였다. 연초에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되어 울적하고 서운해야 하는데, 누구도 챙기지 않아도 되고 챙김만 받게 되는 일상은 정말 너~무 편했다. (남편 미안)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구나'를 느끼면서 남편이 한국에 돌아오면 남편도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내가 그전보다 더 잘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모든 관계에는 '허니문' 기간이 있듯이, 엄마와 나의 관계도 '허니문' 의 마침표가 찾아오게 되었다. 4월에 내가 남편을 보러 프랑스에 2주간 다녀와서 귀국한 날, 우리 엄마는 나에게 "잘 다녀왔니. 프랑스는 어땠니." 묻지도 않고 반가워 하지도 않았다. 세상 지친 표정으로 본인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지 하소연만 하셨다.

  

'비행기 14시간 타고 온 내가 피곤하지 엄마는 혼자 계속 쉬었으면서 뭘 그렇게 피곤한 티를 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서운함을 꾹 눌렀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하루는 괜찮았다가 다음 날은 힘들었다가를 반복했다. 내가 친정에 들어와서 엄마가 잘 해주고자 애쓴 허니문 기간이 종료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친정에 지내는 게, 엄마 집에 딸과 강아지 한 마리 객식구가 늘어난 게, 엄마의 생활패턴과 체력에는 무척 부담이었던 것이다.


눈치껏 시켜 먹은 배달음식들


엄마가 피곤해 하는 것 같으면 눈치껏 배달음식을 시키고, 청소를 해 놓던 나도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 안색부터 살피고, 엄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엄마가 하고 싶어 하는 화제를 꺼내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경청이 진정한 대화의 기술이라는데... 이거 진짜 어려운 거다)

엄마는 몇 달 전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피곤해 했으니까 눈치 보며 사는 나도 친정에 있는 게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과 통화하다가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자, 남편은 득달같이 시댁에 전화해 "내 와이프 친정에서 힘들다니까 빨리 우리집(시댁) 들어와서 살게 해"라며 시부모님께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지 말고 본인이 한국 빨리 들어오면 될 것을 ㅡㅡ) 시부모님은 원래 엄마와 딸 사이가 티격태격 하면서 지내는 거라며 언제든 본인집 와서 편하게 지내라고 하셨다. 


하지만 시댁엔 내가 지낼 방도 없고 시부모님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친정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얼버무리던 차, 아버님에게 전화가 왔다.


"둘째네 애들 놀던 놀이방 짐들 다 빼고 침대 들여서 너 방 만들어 놨어. 언제든 편하게 와서 있다 가!"

아버님이 눈을 곱게 접어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게 그려졌다. 그렇게 갑작스레 만들어진 시댁의 내 방.






고민 끝에 엄마에게 슬쩍 흘리는 말로 떠보았다. 


"엄마, 나 시댁에 가서 좀 지내다 올까 봐. 내 방 만들어 놓으셨대."

"(주방에서 내 방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며, 근래 들어본 적 없던 하이톤으로 만면에 웃음 띄며) 진짜? 얼마나?"

"일단 한 달 정도 있다가... 상황봐서 더 있던가."

"한 달이나?(더욱 경쾌해진 목소리) 시댁에서 괜찮대?"

"응. 빨리 오라셔."

"안 그래도 너희 이모가 같이 눈썹 문신 하자고 서울로 오라고 했는데 내일 간다고 해야겠다~~"



서운하면 내가 나쁜 거겠지. 우리 엄만 그냥 솔직한 거다. 조절 안 될 정도로 진짜 기쁜 거다. 70대의 엄마에게 딸하고 강아지 수발 들게 하는 내가 나쁜 거였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 걸까. 머리로는 엄마 체력이 힘들어서 그런걸 다 알면서, 내가 엄마에게 그냥 짐이었을 뿐인가 싶어 자꾸 토라지고 싶어진다.


전날 딸에게 그렇게 기쁜 티를 냈던 우리 엄마는 다음 날 아침에 미안했는지 오랜만에 밑반찬과 찌개를 만들어 밥을 해 주고, 점심은 됐다 기어코 사양하는 나를 닭백숙을 해 먹여 시댁에 보냈다.


이제 시부모님과도 허니문이 끝나면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시댁과 친정을 눈치껏 오가며 지내는 유목민 생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겨울만 하면 생활 환경이 바뀌니 아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자.


그래, 다시 관점을 바꿔 보자.

딸하고 원플러스원 강아지까지 친정엄마가 무조건 기쁘게 뒷바라지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70대의 울엄마도 편할 권리가 있다! 며느리 편하게 지내라고 방까지 비워주는 시댁 있으니 나는 참 사랑받는 사람이 아닌가! 


한 가지 확실한 것. 진짜 우리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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