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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12. 2022

시댁살이, 며느리 고생은 세 발의 피

밥을 해 먹인다는 것의 의미

시댁 가는 나를 반기는 친정엄마를 뒤로 하고, 시댁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흘렀다. 시댁은 원래도 일요일 저녁마다 방문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그 전보다 삶이 훨씬 단순해지고 생산적이 되었다.


시댁 가는 딸을 반기는 친정 엄마 (brunch.co.kr)



서로 배려하느라 TV 전기세 안 나오겠어요

돌이켜보니 퇴근하고 집에 와서 일주일간 TV를 한 번도 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요즘 독서에 몰두하고 있기는 하지만, 강아지 산책시키고 저녁 먹고는 으레 1시간은 TV를 보며 멍을 때렸는데, 이제 저녁을 물린 후 바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버님 어머님과 거실을 공유하기 때문에^^;;

설거지 후 내가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서 안 나오면, 시부모님이 '우리가 불편해서 안 나오나'라고 생각하실까 봐 일부러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독서는 해야겠기에 노트북을 펴서 전자책을 읽는다.


문제는 아버님도 어머님도 TV를 보지 않게 되신 것. 공인중개사 2차 시험을 준비 중이신 아버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험 강의를 보시거나 정치 유튜브를 보시고, 어머님은 취미인 뜨개질을 하신다.


그런데 지금껏 시댁을 수차례 방문하고 한 때 살아보기도 했던(몇 년 전 남편 목수술 후 회복기인 2개월 정도) 나의 기억으로는, 시댁엔 항상 TV가 켜져 있었는데...


그렇다. 시부모님도 내 눈치를 보시는 거다. 책 읽고 공부하는 며느리에게 방해될까 봐 일부러 더 강의 듣고 뜨개질을 하시는 것이다. 누구도 의도치 않았지만 우리 셋 다 모두 엄청나게 생산적인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공부가 필요하신 분들은 시댁생활 강추합니다 ^^)




친정은 친정

나를 시댁에 보내고 미안했는지 엄마는 나에게 "주말에는 꼭 친정에 와서 하루 자고 가라"라고 해서, 토요일 오후에 강아지를 데리고 친정에 왔는데...


나 엄마한테 분명 조금 삐쳐서 나갔고, '시댁이랑 친정이 다를게 뭐야?' 라면서 호기로운 마음으로 시댁을 간 건데...


친정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서 깊은 낮잠을 자게 되었다.





시댁에서 일주일간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숙면을 취하지 못해 엄청 피곤하던 차였다. '엄마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대수인가? 주말마다 여길 와야 내가 숨통이 트이겠구나!' 싶었다. (시부모님 엄청 서운하시겠네ㅠㅠ)


참 이상하다. 시부모님은 정말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참 잘해주시고, 간섭하는 것도 없으시고, 드라마의 시부모님처럼 잔소리 싫은 소리 한 번이 없으신데. 그래서 나는 시댁도 정말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친정 친정 하는구나 새삼 느낀다.



밥살림에서 본인을 해방시킨 엄마

아직도 피곤해 보이는 엄마를 보고 토요일 저녁은 대충 치킨을 시켜 먹고, 일요일 아침에 엄마가 닭도리탕을 해주는데 꺼내는 밑반찬을 보니 지난주에 내가 떠났을 때 먹었던 것 그대로이다. 심지어 남은 양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우리 엄마의 닭도리탕



엄마 : 너 가고 집에서 밥을 한 번도 안 먹었어.
나 : 응? 한 번도?
엄마 : 아침엔 그냥 샐러드 해 먹고, 점심은 밖에서 먹고, 저녁은 대충 때웠어.
그래서 밑반찬이 그대로네 호호호. 너 다음 주에 오면 그때 오이지나 무쳐야겠다~



엄마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누군가의 밥을 챙긴다는 것, 그를 위해 장 보고 요리하고 뒷정리하고 설거지하고 또 다음 요리를 걱정하는 이 모든 것을, 왜 난 엄마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엄마. 가족들 밥 다 챙기고 남편이 다 먹고 일어서자 그제서야 본인 밥을 들고 앉는다.



자신만 남게 되자 그 '고된 노동'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버린 엄마. 엄마에게 미안하면서도 뒤돌아서니 또 시댁의 어머님이 걱정스럽다. 우리 어머님도 며느리 챙긴다고 힘드실 텐데...


물론 시댁에서는 친정에서처럼 찌개에 아침을 챙겨 먹고 나가지는 않지만, 며느리 아침을 안 챙겨 보낸다는 것에 마음이 쓰이는 어머님은 사과 한 알에 삶은 계란을 챙겨주시며 매일 아침 나에게 마음을 쓰신다.


물론 내가 시댁에 오기 전에도 아버님과 저녁은 해 드셨을 테지만, 며느리와 함께 사니 따뜻한 반찬이라도 하나 더 하게 되실 테고. 그렇다고 내가 밥살림을 맡아하는 것은 불편해하시고 또 어찌 보면 영역의 침범이니, 일주일에 몇 번은 맛있는 저녁거리를 사들고 오는 센스를 지속해야 한다.


내 집이 없어지니 친정에서나 시댁에서나 '얹혀살게 되는 것'은 방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대부분 시댁살이, 처가살이를 한다고 하면 며느리나 사위가 고생한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자식 부부 거둬먹이고 보살피는 주름진 우리 부모님들이 엄청 고생하시는 거라는 거,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처절히 깨닫는다.


빨 옷은 친정에 가져와서 세탁기 돌리고, 주말에는 시댁 청소하고, 매일 저녁 강아지가 쓴 화장실 깨끗이 청소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당연하고, 시부모님이 지치시지 않도록 외식과 나들이도 한 번씩 가는 센스를 부려보자.


내 처지에 몰입할 때가 아니다. 주름진 우리 부모님들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챙겨야 한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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