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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Oct 19. 2022

친정보다 시댁이 편한 며느리

'마땅히'가 없을 때

남편도 없이 시댁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내 지인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렇게 묻는다.

"안 불편해??"


벌써 몇 십번 똑같은 질문에 대답을 해 본 나도 갸우뚱해졌다.

'왜 나는 시댁이 이렇게 편하지?(심지어 친정보다)'





얼마 전 그 날, 심하게 뒤척이다 침대시트에 붉은 자국을 남긴 적이 있었다. 퇴근하고 와서 빨래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출근했는데, 퇴근해 보니 이미 어머님이 시트를 갈아놓으셨다. 

내가 민망할까봐 이런 말을 덧붙이시면서.


"고무줄이 달린 침대시트가 없어서 일단 그거 깔았는데, 시트 안 움직이게 침대 매트에 고정하는 고무줄 달아줄게. 쿠팡으로 시켜놨어."


혹시 치워줄 거 없나 방문을 열어보시고 이불을 개어주다가(시트를 가리느라 일부러 안 개었다) 빨래거리를 찾고, 빤빤한 침대시트 위에서 며느리가 편하게 잤으면 하는 바람에서 고무줄까지 주문한 어머님.


어머님이 손바느질로 달아주신 침대시트 고무줄. 아버님 어머님이 함께 만들어주신 옷걸이.



어떤 며느리는 어머님이 내 방에 들어오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할지 모르지만, 나는 며느리가 쾌적하고 편한 방에서 쉬었으면 하는 바람에 챙겨주시는 어머님이 너무 감사하다. 칠칠치 못하게 뭘 묻히고 다니냐는 핀잔을 안 주시는 분이라 더 고맙다.






내가 요즘 먹는 양이 줄면서 화장실 가는 일이 '기분 좋은 에피소드'가 되었는데, 시부모님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며느리는 그 일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신나게 떠들었다.


"어머님, 오늘 3일 만에 화장실 갔어요, 드디어! 이제 속 너무 편해진 거 있죠? 화장실을 못 가서 아까 밥을 많이 못 먹었나봐요~"



주고 받는 이 얘기를 기억한 아버님은 코스트코에 장 보러 갈 때마다 장에 좋다는 '마시는 요구르트'를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으신다. 코스트코 갈 만큼 장 볼게 많지 않은데 요거트가 떨어진 때는 '빨리 요거트 사다놓으라'는 아버님의 성화를 듣고 어머님이 근처 마트에서 한 병에 무려 6,000원 가량의 비슷한 요거트를 사다놓으신다. 우리 어머님, 채소 살 때도 100원 더 싼 것 사시려고 눈에 불을 켜시는 분인데. 


본인들 위해서는 절대 사지 않을 비싼 요거트를 사다 놓으시고 우리 어머님은 절대 생색 내지 않는 게 매력이다. 그런 어머님 옆에서 아버님이 이렇게 외치신다. 


"얼른 요거트 마셔라~ 아까 네 엄마가 너 먹으라고 장 봐왔어."






나는 지금 시댁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한 상태다.

살림의 주도자에서 보조자로 내려서니, 몸이 한결 편하고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는 가족과 함께 지내니 마음에 거북함이 전혀 없다.



곱씹어 생각해 보니 우리 시부모님은
상대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전혀 없다. 



친구들의 사례를 떠올려보면, 자식 세대에게 뭔가 지원해 주는 것이 있는 부모님 세대는 흔히 말해 바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갓 결혼한 내 친구는 혼전임신으로 직장을 쉬게 되었고 친구 남편은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월세로 신혼을 시작한 내 친구 집의 월세를 시댁에서 부담해주었다. 아들의 통장관리를 본인이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시어머님이 하셨다고 들었다. (더 긴 말은 하지 않겠다 ^^;)



웃어른이고 대접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관계에서, '마땅히'를 찾지 않는 내면의 건강함.

향기로운 품격이 느껴지는 우리 시부모님의 인격이 참 좋다.

나이보다 젊게 산다는 것은 ‘빼기’의 관점으로 사는      일상에서 나온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덕지덕지 붙은 ‘더하기’의 유혹을 얼마나 잘 뿌리치느냐가 젊게 사는 비결이다. 어른 대접 받고      싶은 마음을 빼고, 가르치려는 마음을 빼고, 휘두르려는 마음을 빼고, 체면을 세우고 싶은 마음을 뺄 때 비로소 삶의 본질이 보인다.
<잘 살고 있나요(이종완)>


 

내가 시댁에서 편히 지낼 수 있는 이유는, 허물 없이 친근하게 두 분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다정한' 두 분이 나를 아끼고 귀중히 여겨 주시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고 순전히 시부모님의 사랑 덕분이다. 



감사한 만큼 표현해야 건강한 관계가 되기에 나도 나름의 노력을 하기는 하는데, 내리사랑이라고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다. 


시부모님이 안 드셔본 브런치를 주말에 만들어드리는 것.

아버님 생신상을 차려드리는 것.

두 분만의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보셨다고 하기에 가을여행을 보내드리는 것.



내가 하는 감사의 표현은 일상적이지 않고 일회성인 느낌이 든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상대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법, 시댁에서의 시간은 그것을 잘 배우고 실습하는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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