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6년 차에 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레오는 고운 베이지색 털을 입고 푸른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예쁜 아이였다. 이 예쁜 아이도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주룩주룩 설사였다.
분양을 받았지만, 사실상 구조를 해 온 것이나 다름없었던 우리 강아지의 어릴 적 환경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비위생적이었다. 그로 인해 장에 못된 기생충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새벽에도 2~3시간에 한 번씩 거실에 설사를 하고 있었다.
여러 방법을 찾다가 불에 익힌 음식이 장에 편하다는 정보를 접하고, 강아지 나이 7개월쯤부터 화식 만들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화식은 단백질류(고기나 생선)를 주축으로, 갖은 야채를 다져서 함께 찌거나 끓여서 만들게 되는데, 사료를 먹을 때보다 기호성이 좋은 것은 물론 소화하기도 편해 우리는 드디어 강아지 설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
변 양이 반으로 줄고, 털이 부드러워진 것은 덤으로 얻은 효과였다.
좋은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고, 화식의 한 가지 문제점은 많은 시간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한 끼에 200g 정도씩 하루에 두 끼를 먹으니까, 일주일에 3kg의 화식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보통 2주 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야채 다지고 고기 썰고 익힌 후 소분해서 냉동실에 담아놓기까지 꼬박 2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화식을 만든 지 1년쯤 되어 슬럼프가 한 번 찾아오게 되자, 나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TV에서 광고하는 유명한 화식 제품을 주문하여 먹인 것이다. 다 좋은데 너무 비싸서 고민하던 찰나, 시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어느 날 집으로 배송 온 화식 제품의 가격을 알게 된 어머님은 만들어 먹이면 훨씬 쌀 텐데 이걸 사고 있냐며, 퇴근 후 집에 오자 뚝딱 일주일치 화식을 만들어 놓으셨다.
아들 부부 거둬 먹이는 것도 모자라, 개밥까지 수발들게 한 죄책감과 감사함에 '어머님 외출해 계실 때 내가 만들어놓으리라' 다짐했으나 오랜 기간 화식을 사 먹이던 나는 자꾸만 밥 만드는 것을 까먹게 되었고, 어머님은 내가 없을 때 늘 화식을 만들어 놓으시게 되었다.
왜 어머님이 화식을 만들어 주실까? 내가 그렇게 예쁜 며느리여서?
아버님이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하셨다.
"레오가 있어서 네 엄마가 활력이 생긴 것 같아. 내가 맨날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 있는데, 거실에 나와보면 개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맨날 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시는 아버님은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며 보내시고, 외출할 일이 없는 날에 어머님은 그간 꽤 적적하셨던 것 같다. 개를 정말 싫어하던 사람이라고 하셨던 어머님은, 이제 귀가했을 때 레오가 반기지 않으면 대놓고 섭섭해하신다.
어머님과 레오 산책을 나갔을 때, 내가 조심시킨다고 목줄을 잡아끌면 '나중에 목 아파서 레오 밥 못 먹는다'라고 레오를 걱정하시고, 다른 개에게 흥분하는 레오를 내가 혼낼 때면, '다른 개앞에서 그러면 우리 애가 자존심 상한다'며 견격(?)을 존중해 주신다.
확실히 우리 어머님이 나보다 '한 수 위'이다.
개가 '혹'이 되지 않고 '선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인다.
우리 레오는 집에 물어뜯을 것이 산더미인데 한 번도 저지레를 치지 않는다고, 간식을 먹은 만큼 밥을 남기기 때문에 밥을 남기면 간식을 많이 준 우리 잘못이라 말하며 어머님 무릎을 베고 누운 강아지를 쓰다듬는 어머님 손길에 사랑이 묻어난다.
사랑은 쌍방이라고, 레오도 그런 어머님을 특별히 따르게 되었다.
얼마 전 어머님이 1박 2일로 여행을 가셨을 때 이틀째가 되자 레오는 아침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어디 아픈가 어제 뭘 잘못 먹었나 생각하다가 혹시 어머님 때문인가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이 귀가하자마자 바로 밥통으로 달려가서 허겁지겁 밥을 싹 다 비운 레오.
그가 그리워 입맛도 없었다는 강아지와 어머님은 한참을 수다를 떠셨다.
강아지마저도 환영해 주시는 사랑 많고 다정한 우리 시부모님.
시부모님의 사랑이 늘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이번 주말엔 기필코 내가 화식을 만들어 놓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