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편까지 함께 하게 된 시댁에서의 네 식구 일상은 꽤 평온하게 흘러갔다. 남편은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을 상상하며 그 시간을 버텼기에 한국에 돌아오자 그전보다는 조금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본인이 먹은 물컵조차도 개수대에 갖다 놓지 못하는 성격에서, 내 비타민을 챙겨주고 내가 마신 컵까지 챙겨 개수대에 갖다 놓을 정도로. '그 정도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라고 놀란다면 내가 정말 할 말이 많다. 시댁에서 내가 유달리 잘 지내는 며느리인 것은, 남편의 지분도 상당하다.
어제저녁에 일어난 일이다. 네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고 밥상을 치우는데 웬일로 남편이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남편은 잠깐 일을 쉬고 있고 나는 퇴근 후이더라도 저녁밥상 설거지는 항상 내 몫이었는데 말이다. 그에게 멋지다 한 마디 해주려는 찰나, 식기세척기가 있는데 왜 설거지를 해야 하냐며 그의 푸념이 시작되었다. 푸념이 곧 항의로 색채가 짙어져 당황하는 사이, 늘 조곤조곤 말씀하시던 어머님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남편 : "식기세척기가 있는데 왜 일일이 이걸 손으로 해야 하냐고!!!! 이거 전기세도 안 나오는데"
나 : "식기세척기가 너무 크니까 이 정도 양으로는 못 돌리잖아. 내일까지 쌓아두면 냄새나서 이 정도 양은 그냥 손 설거지 하는 게 나으니까 그렇지."
어머님 : "하기 싫으면 그냥 나와!!! 누가 너한테 하라 그랬나! 웃기는 놈이네 진짜"
평소 같으면 아들에게 화를 내며 혼내셨을 아버님은 공인중개사 시험이 코 앞이어서 그런지 몇 마디 타이르고 들어가셨다.
이전보다 조금은 부지런해진 우리 남편이 10분도 안 걸리는 설거지에 그렇게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은 일을 쉬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일하고 온 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는 게 민망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기세 좋게 설거지에 나선 것인데, 막상 시작해 보니 짜증이 난 것. 그의 부지런함은 마신 컵을 개수대에 갖다 놓을 딱 그 정도까지이기 때문에.
이쯤 되니 '분가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집안일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데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는 것을 시댁 와서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집안 살림을 홀로 꾸릴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해지고 암담해졌다. 시댁에 와서 방 하나로 적어진 살림이 답답한 것이 아니라 만족스러웠던 것은 순전히 집안일 때문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집안일 분담도 포기하고 살았는데, 내가 많은 몫을 감당하고도 내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집안일의 문제는 단순히 몸을 얼마나 더 움직이느냐 차원이 아니라 행동방식의 변화인지라 마음가짐의 문제이고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을 바꾸는 마음먹음은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어리광 부리듯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생한 적이 없거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경우다. 몇 년간 사회생활을 하고 몇 번 실패도 하다 보면,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리하려는 의식도 높아진다. 당신이 감정적인 건 감정을 관리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도 이유지만, 더 큰 원인은 자신이 멋대로 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건 곧 '내 멋대로 굴어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과거의 당신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며, 이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회에서 몇 년 부대끼다 보면 그제야 깨닫는다. 세상은 그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는 그 중심이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물러서지 않는 용기(리궈추이)>
자라오면서 늘 본인이 원하는 걸 손에 얻었고 누군가의 기대나 바람에 맞추어 살아본 적이 없는 남편은 아직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고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하다. 그렇지만 이런 그에게도 배우고 싶을 만큼 멋지고 뛰어난 다른 면이 많기에 나는 그가 배우자로서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는 우리 부모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세심히 챙겨서 무심했던 내가 그간 많이 보고 배운 롤모델이기도 하고, 그간 잘못 쌓았던 내 인간관계를 지켜보고 조언을 해 주어 올바로 잡을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모습을 하던지 나를 지지하고 신뢰하고 사랑해 줄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인생의 비바람 앞에도 넘어지지 않을 원동력이 되어 준다.
영화 'flipped'에서는 눈길을 잡아 끄는 어떤 사람의 멋진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각 부분을 모두 합하면 오히려 전체가 부분보다 못하기도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The whole could be less.)
개별적인 주체로서 누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것이 오만한 일이긴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본 나는 그가 부분보다 전체가 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The whole being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
그래서 우리가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만날 때까지 각자의 노력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참기 어려운 그의 면이 있듯이, 그도 나에게서 그런 부분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에서 그치지 말고, 서로 평온하게 각자의 마음을 얘기하고 차분하고 수평적인 관계 위에서 각자를 자기 객관화해 볼 수 있는 단단한 자아를 가진 부부이고 싶다.
시댁에서의 시간은 각자의 마지노선, 그 합의점을 찾는 연습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