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프랑스에서 최소 1년 이상 지낼 것을 계획하고 올 1월에 출국했는데, 갑작스레 신상에 문제가 생겨 귀국을 당기게 되었다. 좋은 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그가 홀로 보낸 시간이 '누림'이 아닌 '고독'이었기에 그의 귀국이 반가웠다.
남편이 돌아오자 내 친구들이 물었다.
"막상 돌아오면 귀찮아지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나는 그간 남편 없이도 바쁘게 지냈었다.
남편 없이 살아본 나의 9개월은 꽤 빼곡했다.
1월, 좋지 않은 일을 배경으로 남편을 해외로 보내고 나자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시렸다. 늘 함께 하던 사람이 없어지니 넘치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자기 연민에 빠져들기 쉬웠다. 하루 한두 번 하는 영상통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늘 지쳐 보였기에 더 진이 빠졌다. 이 헤어짐의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마이너스만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남편이 프랑스행을 간절히 원했기에 티를 낼 순 없었다.
회사 동료들은 장거리 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는 거라며 부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점점 무저갱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2주 정도 무력하게 보내고 나니 이렇게 더는 안 될 것 같아 새벽 5시 기상을 실행하게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김유진 변호사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게 되면서부터이다.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만큼 진정한 휴식은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진리를 새벽에 가장 크게 느낀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크리스천인 나는 새벽 4시 55분에 일어나 5시부터 시작하는 새벽예배를 유튜브를 통해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조용한 찬양을 틀어놓고 기도를 올렸다. 그때는 정말 내가 힘들었었는지 기도하며 많이도 울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차분히 비워진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기 전까지 자기 계발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전까지 2시간, 퇴근 후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1~2시간 정도를 꾸준히 나에게 투자했다. 열정은 '꾸준함'임을 기억하며 습관을 들이고자 했다. 그러자 걱정, 근심이 들어설 시간이나 틈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일상이 단순해지니 퇴근 후나 주말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무기력하게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삶이 생산적이 되니 성취감이 생겨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힘이 생겼다.
자기 계발은 신경안정제와 같았다. 텅 빈 정신을 촘촘히 메꿔주었다.
노동은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일, 다시 말해 바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정신질환 치료제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바쁘지 않을 때 우리의 정신은 진공상태에 가깝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몰두할 때 편안한 안정감, 내면의 깊은 평화, 일종의 행복한 무감각 상태가 된다. 텅 빈 정신은 걱정, 두려움, 혐오, 질투, 부러움과 같은 감정으로 채워지기 쉽다.
<자기관리론(데일 카네기)>
<올해 자기 계발의 기록>
1. 1월~4월 : 한국어교원 자격증 2급 1학기 수강(온라인) - 8과목(1과목당 30차시)
2. 2월~4월 : 시원스쿨 프랑스어 수업 수강(온라인) - 100강
3. 5월 : Delf, IELTS 준비
4. 5월~ : 글쓰기(브런치) - 글 24개
5. 6월~ : 독서(밀리의 서재) - 105권 (10/23일까지)
올해 상반기까지는 남편 따라 프랑스에 갈 계획으로 언어 공부에만 시간을 쏟았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결국 이민은 접게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남편의 프랑스행으로 인해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축복이라 생각된다.
한참 무기력을 향해 달려가던 30대 후반, 신혼 8년 차에 오롯이 혼자가 됨으로써 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참 소중했다. 방향성 없이 흘러가는 삶에 대해 통렬히 자각하고, 이상만 꿈꾸고 있던 철부지 나를 발견했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내가 '나도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철저하게 평범한 사람임'을 가슴 깊이 인정하게 되었고 사람의 소중함, 관계의 소중함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봐도 이렇게 모지란 나를 참아주고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넓은가!)
무엇보다, 남편과 함께일 때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지난주 친정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친정에서 살 때처럼 레오와 집 옥상에서 공놀이를 해 주었다. 엄마 집 옥상은 뛸 만한 공간이 있어 레오가 참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레오에게 공을 두어 번 던져주고 마침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데, 혼자 친정에 살 때 그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면서 외로움이 온몸을 휘감아 눈물이 났다.
남편을 보내고 혼자 지낸 그 시간이 '외로움과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시간'이었다는 걸 눈물이 말해주고 있었다. 씩씩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바쁘게 살았지만 사실은 남편이 너무 필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실상 홀로 행복하기란 본성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겪고 있는 불행은 언제 끝날지 앞이 보이지 않고 수입은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가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을 곧잘 듣는 것은,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감사하며 나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 최고의 사람인 배우자와 함께할 수 있음이다.
삶은 결코 예측과 바람대로만 흘러가지 않지만, 함께 비바람을 맞을 가족이 있다면 두려워도 앞으로 나갈 수 있음을 배웠다.
불운한 삶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평범할 수 있음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