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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ug 11. 2019

길치; 거실에 TV를 놓고 생긴 고민

미디어 중독자가 된 모녀 삼대

집수리가 끝나고 가구를 사고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집 꾸미기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입주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이제 더 이상 구입할 건 없을 정도로 (아직 남은 하자 보수를 빼면) 힘든 집 공사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 가장 고민하고 신경을 썼던 게 거실이다.

아빠 생전 답답한 걸 싫어하시고 엄마와의 선호 온도차가 달라 엄마는 주로 방을, 아빠는 거실을 방처럼 사용하셨기에 거실이 아닌 아빠만의 공간이었다. 늘 이불이 깔려 있었고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이불을 개서 옆에 놓고 상을 펴서 앉아야 하는 구조였다.


난 그 구조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았고 보기만 해도 속이 답답해졌었기에 이번에 수리하면서 거실은 무조건 깔끔하게 소파와 테이블만 놓겠다 맘먹었었다. 그리고 TV는 원래대로 안방에 놓고.. 거실은 식구들이 모이고 쉬어야 하는 공간인데 멍하니 TV만 보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싫었다.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이, 나 혼자만의 거실도 아니고 엄연히 이 집은 엄마의 집인데.. 인테리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 프로와 연속극, 음악 방송 등을 즐겨 보시는 엄마와 어린이 방송을 보는 아이가 이전처럼 거실을 두고 답답하게 방에서 볼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거실에 놓자 하니 두 손 들어 반기는 엄마와 아이..

TV가 작고 코너가 라운드라 맞는 TV장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마침 적당한 걸 구하여 구석에 놓으니 크게 복잡해 보이지도 않으면서 나름 아늑한 공간이 완성되었다.


더 이상의 어떤 소품의 추가 없을 거라고 식구들에게 못 아놓고 관리하니 볼 때마다 뿌듯해지는 거실이 되었다. (현재 엄마의 파리채와 아이의 물건들이 많이 더해졌다) 내가 사용하진 않아도 깔끔한 거실에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소파에 앉아 쉬는 모습을 보면 식구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TV가 하루 종일 켜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편안히 TV를 볼 수 있는 환경에 방학이라 시간도 많으니 많은 시간 TV를 보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이가 없으면 뉴스와 건강 프로그램 등을 보신다. 이 것도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인데 엄마가 보시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을 할 시간에 아이가 만화를 보고 있으면 그만 보고 숙제하라며 아이를 야단치고 아이는 왜 갑자기 그러냐며 둘이 싸우기 시작했다. 옛날 방식 육아의 육십 대 어른과 아직 비논리적인 아이의 싸움은 절대 결론을 낼 수 없고 내가 개입해야지만 끝난다.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올라오는 식.


평소 아이가 방과 후 수업, 학원 3개를 다니기에 이것만 해도 힘들겠다 싶어 틈틈이 TV 보는 걸 자유롭게 두곤 했고 아이 입장에선 이전처럼 침대에 걸터앉아 불편하게 보는 게 아닌 소파에 누워 편하게 보니 (게다가 에어컨 앞) 습관이 된 것 같다.


엄마 또한 주로 주방과 방에 계시다 식구가 줄고 주방일이 줄어드니 남는 시간에 소파에 앉아 TV를 보시는 게 낙이 되었다. 살아 있는 시사저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대한민국 내외 모든 뉴스를 실시간 브리핑이 가능하실 정도다.


그러니 둘이 같이 있는 시간에는 부딪히게 된 것.

결국 아이를 불러 올라오고 나서야 그 싸움이 끝이 난다.


그래서 요즘 고민과 후회가 든다. 곧 일을 시작하게 되면 더 하면 더 할 텐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이가 개그맨도 아닌 일반인들이 나와하는 (내 시각으로는) 퀄리티 떨어지는 방송에 노출되는 것도 싫고 아직 육십 대 초반인 엄마가 벌써부터 하루 종일 TV를 보고 시간을 떼우시는 것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는가..

최근 한 달여간 공사가 마무리되고 힘들다고 힐링의 개념에서 보게 된 넷플릭스 미드를 두 개나 끝냈다.

조용히 아래층의 분란을 눈감고 귀 막으며 미드를 정주행 한 것.


오늘 아침에 빌리언스 시즌4 마지막 에피소드를 끝냈고 다른 걸 또 물색하다가 잠시 멈춰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놓고 안 본 책들은 쌓여 있고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아이 방학숙제는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방학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다.





해결책이 필요하다.

다시 TV를 방으로 옮길 순 없으니, 집수리 중 원룸에서 고생했고 가구 들이고 정리하느라 모두 수고했으니 늘어진 시간은 그동안의 보상이라 생각하고, 아이에겐 TV 보는 시간을 정해 약속하고, 엄마에게도 아이가 보고 싶어 하니 아이 숙제하는 시간에는 웬만하면 TV를 틀지 말라고 부탁해야겠다. (본 뉴스 또 볼 필요 없지 않냐고도 넌지시 떠봐야겠다. 운동부족의 경고와 함께)


그리고 나도! 빌리언스 시즌5가 나올 때까지 잠시 넷플릭스를 닫고 책도 보고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물론 적극적인 구직 활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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