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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18. 2019

아이 눈에 비친 금수저와 흙수저

진실을 말해주지는 못했다

화요일은 아이의 방과 후 스케쥴이 없는 날이다.

평일에 하루는 꼭 쉬어야 한다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 그 날은 방과 후 수업도, 어떤 학원도 가지 않아 1시부터는 자유 시간.. 학원만 안 갈 뿐인데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바람을 들어 인사동에 있는 니블리 카페에 가기로 했다. 간니 닌니 노래를 부르길래 그게 뭔데? 했더니 유투버라네.. (세대차이 흑)


버스를 타고 인사동으로 이동하는 데 아이가 "엄마 저기 가게 이름이 아름다운 가게야"라고 밖을 가리킨다.

"응.. 저기는 사람들이 좋은 일에 쓰라고 기증한 물건들을 저렴하게 팔아서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서 아름다운 가게야. 사람들은 물건을 싸게 사서 좋고 그 돈은 좋은 일에 쓰이니 좋겠지?"라고 교과서적인 대답을 해줬으나.. 딸은 "그럼, 금수저들은 저기서 물건 안 사겠네?"


"헛. 금수저가 뭔데?" (난 요새 쓰이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만..)

"핵 부자"

"그럼 흙수저란 말도 들어 봤어?"

"응 알아. 거지"


헛.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언젠가부터 부모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2세 들을 금수저라 하고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순수히 노력만으로 일궈야 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흙수저라 하는 건 알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흙수저이지만 부모님을 욕보이는 말 같아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게 아이들도 사용하는 단어라는 게 놀라웠다.

심지어 부자와 거지로 뜻이 와전되어..


"그건 잘못된 말이야. 사람을 수저로 비유하는 거 자체가 잘못되었어. 사람은 다 같아. 돈이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금과 흙으로 구분하는 건 이상해. 그럼 우리는 핵 부자가 아닌데 거지야? 그런 말은 쓰지 말자~"라고 이야기는 해주었지만 그 단어들이 어떤 의미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언젠간 아이가 그 말의 뜻을 알게 되겠지만 (사실 그때가 되기 전 그런 단어는 사라지길 원하지만) 본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시작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늦게 늦게 알길 바랬다.

그리고, 시작이 다를지언정 본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충분히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고 믿길 바랬다.




난 사실 돈 욕심이 크게 없는 편이다.

항상 조금 쓸 땐 조금 벌었고,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나갈 일이 생겼기에 수중에 큰돈이 머물지도 않았고 그냥 잘 먹고 잘 놀면 되지 하는 (어른들 입장에서) 철없는 엄마다.


그런데 아이가 열 살이 되어 가니 나중에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지원해 줄 수 있을 만큼은 능력이 되고 싶다.. 또 아이에게 부담이 되는 노후가 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부쩍 든다.


내가 아이에게 그 단어들의 의미를 솔직하게 말해주지 못한 진짜 이유는, 나중에 노력과 상관 없이 좌절감을 느낄 때 나를 원망할까 겁이 났던 건 아닐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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