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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18. 2019

길치; 테일지 타고 엄마 달려

소중한 전기자전거 지름

지난 6월, 3주간 집 공사로 옆 동네 원룸에 살게 되었었다.

https://brunch.co.kr/@puppy3518/13


셋이 작은 방 한 칸에 사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가장 큰 걱정은 아이의 통학이었다.

사실 차로 30분 거리에 넓은 레지던스들이 있지만 아이가 집-학교-학원 1-집-학원 2의 코스로 이동해야 하기에 최대한 집과 학교 근처로 알아봐야 했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을 얻었지만 그래도 걸어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게다가 주차도 안 된다니 덜컥 집은 계약했지만 통학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계속 고민하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 그래, 전기 자전거를 사자.


그리고 폭풍 검색 후, 다음 날 우리 집 앞엔 모토벨로 테일지 A9이 떡 하니 서있게 되었다.

(구입 추진력은 내가 봐도 알아줄만하다)


작은데 멋진 놈


작지만 오토바이스러운 외양에 엄마는 걱정되는 듯했지만 아이는 뛸 듯이 좋아했고, 우리는 그 길로 바로 청계천까지 달려 바람도 쐬고 오고 정말 돈 쓰고 행복한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징검다리


계획했던 대로 전기 자전거로 이동하니 통학이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오후엔 주차가 힘들어 눈치 보며 세웠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더욱 맘에 들었다.


그러던 며칠 후, 아이가 자꾸 등 뒤로 자꾸 숨는다.

걸어가기는 싫으니 타긴 타야 겠는데 친구들의 관심에 부끄러운 거다. 그래서 학교가 보이는 골목 끝에서 내려주고 바라만 보아야 했다는 슬픈 등교 이야기.


왜, 엄마가 부끄럽니?


그렇게 빠르지 않아 무섭지도 않고, 테일지는 그렇게 나의 발이 되었다.

걸어가도 될 거리를 굳이 타고 가서 장도 봐오고.. 

주렁주렁 장보기


현재까지도 만족도 200%인 효자 탈 것이다. 




테일지 구입 후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겼다.

생활방수가 된다고 해도 전기 제품이라 물이 들어가면 안 좋기에 밤엔 꼭 커버를 덮어 놓는데, 어느 날 커버를 휙 걷었더니 작은 고양이 하나가 뛰어 나가는 것이다. 


동네 작은 길고양이가 밤에 안식처로 사용하는 것. 그 이후로 고양이가 놀랠까 봐 "걷는다. 커버 걷을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걷으면 두 번의 한 번은 고양이가 뛰어 나갔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발판에 어디서 주워 온 치킨 뼈도 올라가 있고, 다만 습한 커버 안 속 밤새 고양이가 있던 냄새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오토바이 형태의 탈 것에 관심을 갖는다.


첫 번째는 동네 할머니.

"이 것이 자전거요? 오토바이요?" (전기 자전거예요)

"이런 것은 얼마나 해요?" (백만 원 정도 주고 샀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사달라고 하는데 면허가 없어도 탈 수 있나? 영감이 다리가 아파서" (엇 그건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여러 할아버지를 거친 후에..

"이 것이 전기 자전거요?" (네 맞아요)

"다리가 아파서 그런데 이런 건 얼마나 해요?" 


왠지 첫 번째 할머니의 남편 분인 다리 아프신 할아버지라고 추정이 된다.


그리고 또 여러 할아버지들..

내가 마트에 들어가는 걸 보고 장 보고 끝날 때까지 앞에서 기다리시다가 어디서 구입하냐고 물어보시던 할아버지.. 


꽤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 95%는 할아버지 들이셨던 것 같다.

아마 이유는.. 다리가 아픈데 오토바이나 차를 운전하기엔 힘들고 이동용으로 괜찮다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터넷 어디서 구입하냐, 분할 결제는 되느냐, 카드는 되느냐... 구입에 관한 많은 질문들..

60대에 나름 모바일을 잘 사용하시는 엄마도 아직 넘지 못한 온라인 결제의 선을 길에 서서 다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했다.


그리고 든 하나의 아이디어..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데 노인들을 위한 휠체어스럽지 않고, 가볍고 운전도 편한 (면허 없이도 가능한) 저속 탈 것이 출시되면 어떨지.. 그럼 우리 엄마부터 하나 사드릴 텐데..





두서없는 이 글의 결론은, 테일지 구입 후 동네가 재밌어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평소 갈 일 없던 옆 동네의 한옥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행복한 지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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