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치 Oct 09. 2019

수고했어, 내 발

여러모로 미안한 발에게 보내는 위로

올핸 특별히 더 긴 것 같은 여름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간편한 옷차림의 여름을 좋아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많이 힘들었기에 그저 빨리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 2차 인터뷰가 있어 강남에 가야 했고 단정하게 치장하고 봄에 사두었던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현관에서 마주친 엄마의  “우리 딸이 꾸며 입고 나가면 난 그렇게 이쁘더라~” 칭찬과 함께 기분 좋게 출발했는데 걷는 느낌이 좋지 않다.


분명 봄에 구입할 때 잘 맞았던 구두는 여름 내 편한 슬리퍼에 길들여져 발이 커진 건지 심하게 작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5분 거리의 지하철 역까지 가지 못하고 약국에 들러 밴드를 두 겹씩 붙여 만일의 뒤꿈치 까짐 사태에 대비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지하철로 향했다.


“피. 꺼. 솟.”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터질듯한 구두의 조임에 온 몸의 피들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평소 운동화는 일 년에 몇 번 신을까 말까 한 나였는데, 몇 개월 쉬면서 편한 신발만 신었더니 그동안 큰 발을 구두 신기 좋은 발로 만들었던 수년간의 훈련(고생)이 물거품이 돼버렸다.


낮 시간이라 뜸하게 오는 지하철을 승강장 벤치에 앉아 기다리며 발을 내려다보았다.


선명한 슬리퍼 자국.

치열했던 여름의 흔적.

당장의 구두로 인한 아픔보다 그 여름을 견뎌 낸 발이 안쓰러웠다.





3월 26일, 아빠가 쓰러지시고 내 삶에 큰 변화가 왔다.

15년 만에 직장인에서 백수가 되어 시간을 보내는 게 이미 알고 있고 준비했던 변화라면, 그걸 제대로 겪어 보기도 전에 육아, 학업, 병간호, 살림.. 을 한 번에 해야 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변화였다.


아빠 걱정에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르게 눈을 뜨면, 샤워 후 아이를 챙기고 학교에 태워주고 병원으로 가 면회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랩탑을 무릎에 올려두고 논문을 쓰고 과제를 했다. 주변 소음과 부족한 자리에 눈치가 보이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엄마에게 신신당부한 후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논문을 썼다. 그리고 아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 간식을 먹이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데리고 병원에 가서 면회 후 늦은 저녁을 먹곤 했다.


본격적으로 봄이 오고, 아빠는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이젠 병원, 아이의 학교와 학원을 슬리퍼 신고 부지런히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신어본 중 가장 튼튼하고 편한 영국의 F 브랜드의 신발은 아무리 걸어 다녀도 발이 편했기에 빨리 신고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시고 내 일상이 곧 원래의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올 거란 기대와 달리, 취업은 한 없이 늦어졌고 맑으나 비가 오나 그렇게 아이를 통학시키고,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은 커피숍에 가 취업 준비와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덧 발등엔 선명하게 슬리퍼 자국이 남게 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 시간, 슬리퍼 자국만이 남아 그 시간의 기억을 일깨워 준다.

내가 집에 있기에, 엄마는 혼자 남은 미망인이기에, 묵묵히 뜨거운 태양볕 아래를 걸어야 했던 그 시간.. (물론 중간에 전기 자전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튼튼하다던 신발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 걸어 다닌 내 발이 이제는 먹고살고자 일을 하기 위해 걸어 나가려 하는데, 작아진 구두라니..


외출의 시작부터 아픈데 종일 고생할 텐데..

안쓰럽구나.. 내 발들아.




긴장한 상태에선 모든 감각이 마비가 되는 것인지, 아픔을 잊고 기분 좋게 한 시간을 떠들고 나와 이번 인터뷰는 괜찮은데? 하며 기분이 좋기도 잠시.. 다시 몰려오는 피꺼솟의 기분 나쁜 느낌.

오랜만에 나온 김에 달달한 영화 한 편 보고 들어가려 했기에, 한 정거장 거리의 극장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마른하늘 아래 지옥이었다.


이제 극장까지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데.. 전봇대 밑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

곧 불이 켜질 텐데 이걸 갖고 건너면 난 분실한 사람과 약속을 잡아야 할 테니 번거로울 듯싶었다.

앞에 삼성 매장이 있었기에 맡기고 가면, 난 다음 신호등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할 1초가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삼성 매장에 맡기는 걸 선택했고 이를 악물고 버텨 드디어 극장 좌석에 착석할 수 있었다.


시간대에 맞는 관이 4DX관이라 발 받침대가 있어 얼마나 편했는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상상도 못 한 채 공블리의 매력에 푹 빠져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영화 보는 내내 편해진 발들은 시위라도 하듯이 뚱뚱 부어버렸고, 구두는 더 작아졌다.


이를 악물고, 지하철 두 개를 갈아타고 오면서 상점 같은 데를 흘깃흘깃 보며 슬리퍼를 파나 보았으나 그 날 따라 신발을 파는 곳은 없었다.

집을 10분 남겨두고 결국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심심하면 꼬마화가랑 역으로 마중 나올래? 내 슬리퍼 챙겨서..”

“꼬마화가가 싫대”


헉. 자식 키워봐짜 소용없다더니.. 그래 여태껏 참았는데 골목만 들어서면 맨발로 가자.라고 생각하던 참에..

“발 많이 아프면 엄마가 나갈게” (엄마가 최고다.)


저 계단만 오르면, 엄마가 있다. 아니 슬리퍼가 있다. 하고 생각하고 역 계단을 올라서니

뾰로통한 표정의 꼬마화가와 엄마가 있다. 구세주처럼 보였다.


슬리퍼로 갈아 신으니 흐렸던 세상에 ‘매우 맑음’ 필터를 낀 것 같았다.

아이는 지하철 편의점에서 자 이제 맛있는 것을 사 내놓으란다. 알고 봤더니 대가성 외출이었던 것. 허허





그 날 밴드를 두 겹으로 철통 보안하며 지켰던 뒤꿈치는 사정없이 까졌고 이제야 좀 아물고 있다.

예쁜 구두를 좋아하기에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발에게 미안하지만 또다시 구두에 발맞추기 훈련에 들어가야겠다.



그리고 이젠 지난여름의 나의 책임과 임무는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대신하고, 아이의 학교와 학원 말고 일터로 걸어 나가 보자.

미리 사과할게 발.


매거진의 이전글 길치; 테일지 타고 엄마 달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