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치 Jul 31. 2019

길치; 육아용품 세계에서 길을 잃다.

육아용품계 큰손이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9살 아이 엄마로서 이제 육아용품을 검색할 때는 지났으나 꼭 한 번쯤은 고해성사도 하고 싶었고 한 명이라도 육아용품의 허황된 바다에서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란 기대에 글을 쓰게 되었다.



"육아를 글로 배웠어요"

2011년 아이를 낳았을 때, 친정엄마는 갱년기 증상이 최고조일 때라 도움을 청할 수 없었고 현재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는 친구들은 당시 하이힐에 날씬이 원피스들을 즐겨 입는 아가씨들이었기 때문에 정말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을 곳은 오로지 책과 인터넷이었다. 마음가짐에 대한 것은 책으로 실용적인 것들은 인터넷으로..


특히 아이를 안고 있을 땐 유용한 게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이라 그때 그때 아이의 상태를 검색해가며 검색 결과에 따라 안심도 하고 불안도 키워갔던 때였다. 그러나 희한하게 불안해지는 케이스의 비율이 훨씬 많았고 그것들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건 바로 이 제품입니다!라는 솔루션으로 넘어갔다. 그러면 나는 "그래! 이것만 있으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어!"라는 마음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구입하고 또 구입했었다.


아이가 젖병을 거부하자 '젖병 거부 젖병'으로 검색하여 국내, 해외 브랜드들의 젖병이란 젖병과 젖꼭지는 다 사보았고 심지어 직구까지 했을 정도.. (그런데 실패 후 중고시장에 올리면 바로 팔렸던 걸 보면 검색에 의지한 엄마가 나 혼자만이 아니란 사실) 물을 마시다 사레들리면 '두 살 컵', 걸음마하다 넘어지면 '걸음마 도우미', 베란다로 넘어와 빨래를 휘적거려놓으면 '베란다 안전'.. 디자인을 하다 육아휴직 중인 나의 크리에이티브는 집안에서 검색어로 터졌던 것 같다. 어찌 그렇게 상황에 맞는 검색어들을 입력하여 신기하게 딱 떨어지는 용품들을 발견했었는지..


이렇듯, 부끄럽지만 그동안 샀던 육아용품 후기를 쓴다면 파워블로거는 따놓은 당상일 정도로 많이도 다양하게도 사댔었다. 이유는 아이를 위한 거였지만 몇 년이 흐른 후 돌아보니, 당시 불안한 마음을 그런 물건들로 위안하려 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힘들어하지만 며칠 지나면 다 잘할 거야, 크는 과정이야. 잘하고 있어~ 란 나 스스로의 위안이 진정 필요했다는 것을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처분하는 노력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육아용품이 차지하는 공간의 비용이란.."

진정 깨닫게 된 계기는, 내가 지른 아이템 중 피날레를 장식하기 충분한 가격과 어이없는 구성의 한 영어 전집 & DVD 세트.  그런 것들은 엄마의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틀어주기만 하면 아이가 영어를 술술 할 거라는 판매원의 꼬심에 홀랑 넘어가버렸었다. 게다가 당시 유명한 운동선수의 딸이 그 프로그램을 따라 하며 영어를 종알종알 말하고 있으니.. 홀랑 넘어갔다고 변명해본다. 그래도 비싸게 주고 샀으니 나도 좀 더 신경 써서 잘 틀어주고 해 봐야지.. 란 다짐을 할 무렵 모든 것을 정리하고 친정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작은 방에 고가의 영어 세트가 편히 전시되어 있을 공간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최근에 헐값으로 정리하기까지 그것들은 그저 짐이었다. 짐.)


작은 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이전처럼 다양한 장난감, 전집 등을 사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있는 것들도 처분해야 할 판이라 하나하나 처분하다 보니 아까워야 하는데 오히려 아까움 보다는 시원함, 여유가 느껴졌다. 사람이 써야 할 공간을 물건이 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변화가 느껴졌다. 시리즈별로 다 있는 *봇 시리즈들, 온갖 동물들로 변신하는 차 등 티비에 나오는 장난감들은 다 갖고 놀던 아이가 그것들이 눈에 안 보이자 직접 그림을 그려 오려서 갖고 노는 등, 장난감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역할놀이용 캐릭터, 동물, 사람 등 직접 그리고 잘라 빨대로 붙여 인형을 만들고 미로놀이, 퀴즈 등 게임 거리도 직접 만든다.


6살 때, 내가 밑그림을 그려주면 색칠 후 잘라서 갖고 놀기. 오버워치 D.Va


9살 현재, 게임도 만들고 광고도 만든다. 이럴 때 가장 집중하고 행복해하는 듯.




"아이의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비우는 중"

이렇게 말하고 집을 둘러보면 아직 부끄럽지만 사다 나르던 책과 장난감이 끊어진 지 오래인 게 스스로 칭찬할 만하다. 이제 제법 글을 잘 읽는 아이는 실컷 놀고 나면 구석에 박혀 책을 읽기 시작했고 A4용지를 자기 전용으로 사용해서 엄청난 그림을 그려댄다. 요즘은 소설에도 진출하여 나름의 이야기를 짓고 있다.


내가 큰 비용 들여해 준 게 없으니 아이에게 기대하지 않고 아이가 만들어내는 창작물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둘이 가장 좋아하는 데이트 장소인 교보문고에 가면 요즘 유행하는 만화책 한 권 정도는 기분 좋게 사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아이가 스스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선 아끼지 않되 나의 욕심으로, 남에 의해 자극받아서 물건을 지르고 아이가 좋아하길 기대하고 강요하지 말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다른 글을 쓰기 위해 들어왔다가 예전에 쓰다 만 글이 있어 이어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치; 모녀 삼대 단칸방 생활시작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