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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r 28. 2020

열 살 아이에게 아직은 위험한 SNS와 스마트폰

끊이지 않는 고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화기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부모 눈엔 한없이 어린 갓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가 하교 후 혼자 학원에 가야 하고 중간에 할머니와 연락을 해야 할 일도 있을 테니 손목에 차는 시계 형태의 전화기를 사주었다.

보호자의 필요로 사 준 전화기이지만 아이에게는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것이고, 시계 폰에서 제공하는 앱을 통해 나에게 스티커도 보내고 목소리를 녹음해서 보내고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시계 폰의 장점은 등록되어 있는 연락처 외엔 문자와 전화 수신이 안 되어 스팸 문자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얇은 손목에 무겁게 차고 다녀야 하는 전화기를 점점 두고 다녀 전화기를 사 준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고, 주위에 같은 또래의 언니나 친구들처럼 스마트폰을 갖고 싶단 얘기를 부쩍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언젠간 사줘야겠지만, 아직 어린데.. 싶으면서도 안 갖고 다니는 시계 폰보다는 낫겠다 싶기도 하고 나름 고민을 하던 2학년 새 학기 무렵..

시계 폰 사준 지 1년쯤 된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을 파악했던 걸까.. 신기하게도 아이의 시계 폰을 저렴하게 저가 스마트폰으로 변경하라는 통신사의 마케팅 전화를 받게 되었다.


계산해 보니 기계값은 한 달에 몇천 원 정도였고 저렴히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계약을 했고 그렇게 아이는 첫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다.

역시, 천대받던 시계 폰과는 달리 테마도 바꾸며 누가 봐도 초등학생 여아의 폰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화려하게(정신없게) 꾸미며 첫 스마트폰을 소중하게 다루며 행복해했다.

나부터도 부모 앱을 통해 아이의 위치 조회나 사용 시간 등도 설정이 가능하니 잘 바꿨다며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만족도와 다르게 문제들이 줄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스팸문자는 아이의 전화기도 봐주지 않는다.

시계 폰부터 쓰던 번호인데도 그때는 등록된 번호만 수신이 가능하여 스팸문자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바꾼 그 순간부터 아이에게 스팸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박, 주식, 게임...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스팸문자들을 오는 족족 지웠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아이에게 연락처에 없는 이름이 보낸 문자는 절대 전화해보지도, 링크를 누르지도 말아야 하며 읽지도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뒀다.

게다가 이 전에 사용자로 추정되는 이** 씨에게 오는 문자들.. 나는 이**씨가 그전에 벤츠를 몰았고 고급 술집을 다녔으며 여러 캐피털에 연체가 있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캐피털사의 계좌번호까지 찍혀 추심이 왔고 퇴근 후 그 문자들의 연락처를 기록해 다음 날 아이가 작년부터 사용하는 번호이니 번호를 삭제해달라는 전화를 돌려야 했다.

이제 추심 문자는 오지 않지만, 저녁마다 아이의 스마트폰에 문자를 지우는 게 하루 일과 중 하나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얼마 전,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조카가 한껏 예쁜 표정으로 틱톡 영상을 올린 걸 보았다. 영상은 예쁘고 재밌었지만 조카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다는 게 걱정이 되었다.

아이도 틱톡을 하고 싶다며 조르기 시작했지만 왠지 이른 것 같아 내 전화기에만 설치 후 아이가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야 할 시 요청하면 틱톡을 보게 해 주었다.

가만히 보니 짧은 영상들이 꽤 재밌었고 특히 신기한 아트나 만들기는 나마저도 시간 가는지 모르고 빠져들게 했다.

아이의 틱톡 요청은 점점 잦아졌고, 나도 틱톡 콘텐츠에 긍정적인 경험이 쌓여가면서 30분 제한으로 설정 후 아이의 전화기에 설치를 해주었다.

그리고 조카가 하던 것처럼 아이도 예쁜 표정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그림 그리는 영상 외에는 얼굴은 올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상마다 댓글로 대화를 하니 악플과 시비성 댓글에 촉각을 세우고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아이에게 인스타그램을 설치해 준 것을 후회한다.

몇 달 전, 아이는 자기가 어릴 적 모습부터 우리의 일상이 올라와있는 나의 인스타를 보고 잊고 있던 과거의 사진들과 기억에 깔깔대며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나의 인스타를 계속 보고 싶어 했고 일하는 엄마와 소통도 적은데 이렇게라도 나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며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14살의 나이 제한이 있었지만 생년월일을 바꿔 쉽게 가입이 되었고, 그렇게 아이도 인스타그램에 유저가 되었다. (나이 제한을 조금 더 강력하게 했으면 그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나도 핑계를 대본다)

역시 기대대로 아이는, 어설프게 찍은 흔들린 본인의 귀여운 물건들이나 강아지 사진 등을 올렸고, 점점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 올리고 초등학생들의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하며 적절하게 인스타그램을 사용했다. 회사에서 지쳤을 때 아이의 귀여운 댓글 알림은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의 계정은 공개 계정이라 (그림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비공개를 원치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팔로우하며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외국인 성인 남성까지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이 나쁜 의도로 접근했는지 아닌 지는 모른다. 성인 남성이 10살 아이와 무슨 대화를 하고 싶었을까.. 친절하게 접근하는 그들에 아이는 순진하고 반갑게 대답을 해준다. 내가 개입하여 모두 차단하여 더 이상 이어지진 않았지만 요즘 N번방 사건을 보며 그 들 중 그런 놈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며칠 전 동생에게 급하게 카톡이 왔다. 아이 인스타 피드에 수상한 댓글이 달렸으니 어서 가서 보라는 것. 아이는 봄이 왔다며 집 앞 화단에 꽃들을 찍어 올렸고 사진 중 하나에 건너편 빌라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서울 **구 사는구나~”라는 댓글. 난 아이의 모든 피드를 뒤져 그 사람이 쓴 다른 댓글을 찾아보았고 자신을 “오빠”라고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의 피드를 보니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게임에 관련된 것 투성이라 다행히 성인은 아닌 듯 하지만 빌라 이름을 검색해보았다는 사실이 영 석연치 않았다.

아이에게 그 사람에게 우리 집 위치를 알려준 적 있느냐 하니 그런 적 없다고 하고 DM을 뒤져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우선 사진을 삭제하고 그 사람을 차단했다.


아이와 인스타그램 사용에 대해 여러 번 얘기를 했었고 설전을 벌이기도,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위험한 세상에 아이만 조심한다고 될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나의 유튜브 계정으로 그림을 찍어서 올리고 있으니 “그림 자랑”은 거기에 하라고 하고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려 한다.

학교와 학원을 안 가 한껏 게으른 아이가 늦잠을 자고 있고, 아이가 깨면 대화 후 인스타그램 삭제 거사를 치룰 예정이다.




아이가 SNS를 시작한 동기는 순수했다.

엄마와 자기의 일상이 있는 추억을 같이 보길 원했고 나와 소통하길 원했다. 그리고 자기의 자랑거리인 그림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피드백을 받길 원했다.

그런 공간이 온라인이라는 것은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인정해야 할 변화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에게 아직 SNS 환경은 위험하다. 그런 위험한 환경을 만들고 있는 나쁜 어른들이 있는 한 미성년자 아이에게 SNS는 시기상조라는 걸 깨달았고, 사실 아이에게 접근한 익명의 그 사람들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추면 안 되는 것만큼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고 아이를 보호하는 게 부모의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들이 아이가 스마트폰을 사달라 졸라 고민한다면, 최대한 뒤로 늦추라고 도시락 싸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전화가 꼭 필요하다면, 시계 폰이나 키즈폰 사용을 오래오래 하게 하는 게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마트폰을 사줬고, SNS 가입도 해줬던 나는 또 길치였고, 이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을 반성한다.


* 커버 그림은 아이가 아이패드로 그린 흔한남매 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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