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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y 29. 2020

옥상, 그 소중한 공간

집에만 있어도 괜찮아

원래 나에게 옥상이란 빨래와 장독대의 공간이었다.

동네에 전반적으로 벽돌집 다세대 주택이 많았고, 초록색 방수 페인트를 바른 쨍한 옥상에서 엄마 세대의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탁탁 털어 널리는 모습은 너무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요즘은 옥상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나부터도 옥상 하면, 왠지 감성적인 공간부터 떠오르니 우리집 휑한 옥상도 언젠간 아늑하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하지만 옥상 바닥을 물을 뿌려 뽀득뽀득 청소 해야 하는 엄마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는데..


재택 근무로 갑갑한 일상이 이어지던 3월 어느 날,

엄마가 TV에서 보셨다며 옥상에 플라스틱 바닥 까는 것을 봤는데 깔끔하더라며 먼저 말을 꺼내시는 그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도 하자 제안을 했고, 엄마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옥상 벽을 아늑하게 해 줄 싸리 나무 울타리, 바닥을 세련되고 따뜻해 보이게 해 줄 조립식 타일, 그리고 그 이음새를 메워 줄 자갈까지 주문을 해버렸다.  그 물건들이 도착하는 오후는 미리 오후 반차를 내고 작업복을 입고 택배를 맞이했다.




돌돌말린 싸리나무는 너무나 무거웠고 혼자 뱅글뱅글 계단을 통해 옥상까지 몇 번을 날랐는지..

그리고 울타리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못이 있어야 하는데 분명 여기저기 박힌 못을 봤었는데 너무 오래 되어 툭툭 빠져 버린다. 쌓여 있는 싸리나무들을 바라 보며 한숨만 쉬다 동네 맥가이버 할아버지(실력은 별로시다)를 호출하여 허술하게나마 못을 박고 울타리를 완성했다. 울타리를 완성하니 그 다음 바닥을 까는 건 정말 식은 죽 먹기. 나는 꾹꾹 밟아 가며 바닥을 깔고 엄마와 아이는 열심히 가상자리에 자갈을 채웠다.

밤 늦게 완성된 옥상.. 어찌나 뿌듯하던지.. 이제 우리도 아늑한 옥상이 생겼다.



코로나로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턴 마스크와 함께 해야 하는 갑갑한 일상에서, 옥상에 올라가 바라 보는 하늘은 그 갑갑함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우리 동네가 이리 좋았던가.. 

이 전엔 옥상에 가면 이 집 저 집 옥탑에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에 불편했는데 울타리 덕에 오롯이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하고픈 장소가 되었다.



단점은, 하늘 아래 마시는 술은 왜 그리 달고 맛있는 지..

한 번 옥상 파티 할 때마다 쏟아지는 와인병의 갯수는 ... 차마 밝힐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깨끗이 지워진다. 

다음 부터는 정말 술은 좀 줄이고 분위기와 행복한 시간에 더 집중해야겠다. (라고 늘 다짐)




힘들었지만 옥상을 꾸밈으로써, 우리 가족은 너무나 소중한 공간을 얻었다.


재택근무가 종료되어 이제 옥상을 즐길 수 있는 건 주말 뿐..

추워지기 전까지 매 주말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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