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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03. 2020

재택근무 일상

그냥 하루쯤은 기록해보고 싶었다.

재택근무 2주 + 3일째..

3월부터 재택과 재택 해제를 반복했더니 이제 많이 익숙하다.

이전과 다른 거라면, 봄에는 마스크 쓰고 산책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집 근처 확진자가 많이 늘어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점.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도 살아지는 게 신기한 요즘이다. 물론 쿠팡 로켓 배송 덕이 크다.


처음 재택 했을 땐, 갑자기 몰려드는 심심함과 오히려 집이 어색한 느낌을 받으며 그 무료함을 이기려 그렇게 맥주와 와인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그리고 얻은 건 살.. 겨울 + 코로나 집콕으로 5kg의 체중을 얻었다.

그리고 잃은 건 시간.. 아낀 출퇴근 시간을 멍하니 놀며 인터넷을 휘적거리며 버린 시간이 얼마람.. 지나고 나니 그저 아까울 뿐이다.


그래서 이번 재택근무부터는 달라지기로 했다.

달라진 모습이 잘 지켜지고 있기에 나름 뿌듯한 일상을 기록해보기로 한다.


비디오가 아니니 티로그라고 해야 하나. (Text + Log)



오전 6시

알람이 울린다. 아이의 건강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하아.. 조금 있다가 할까? 현재 등교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하라고 했으니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등록한다. 

그리고 잠이 깼다. 일어나 무언가 하고 싶지만 출근까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남짓.

좀 더 누워서 놀아보기로 한다. 

우선 보유 중인 해외 주식 상태를 체크하고, 어떤 화나는 뉴스가 올라왔을까 보고, 밤새 올라온 브런치 피드를 다 둘러보면 브런치 홈으로 가 흥미 있는 글들을 마저 읽는다. 


오전 7시

이젠 일어나야 한다. 한 시간 놀았으면 충분하다.

가볍게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다른 방으로 가 유튜브에서 아침 요가나 아침 스트레칭 등을 검색하여 마음에 드는 것을 틀고 2~30분 요가나 스트레칭을 한다.


오전 7시 40분

이제 잠도 다 깨고 스트레칭도 하여 몸이 개운하다. 밤새 텅 빈 속을 채우러 주방으로 내려간다.

삼식이 아빠가 멀리 소풍을 가신 뒤로, 우리 집은 이제 한상 차린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간단히 먹는다. 나는 오트밀 + 바나나 1개 + 우유를 1분간 덥힌 오트밀 죽과 구운 계란 1개와 커피로 아침을 먹는데 속도 편안하고 좋다. 원래 심심한 음식을 잘 먹기도 하고 가리는 게 없는지라 나에게 딱 맞다. 

다만,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자 최근에 계란을 추가하게 된 건데, 이전에 덴마크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하루에 구운 계란 9개를 먹고 질린 후로, 구운 계란을 입도 안 댔건만 이제 건강을 위해 흰자만이라도 먹기로 했다. 


엄마도 일어나시고, 아이도 슬슬 일어나려 꿈틀댄다.


오전 8시 30분

재택근무의 장점. 출근 준비가 간단하다는 것.

샤워는 출근 30분 전에 해야 제맛. 당연히 맨얼굴로 머리만 간신히 말리고 청소기 한 번 돌린다.

매일매일 이렇게나 많이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그래도 대머리가 안 되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카누 한 잔과 틈틈이 마실 물 한 병을 들고 출근한다.(회사 캡슐 커피가 잠깐 그립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열심히 일.. 일.. 

이전엔 큰 모니터가 있는 서재 겸 아이방에서 일을 했는데 답답하여 이번엔 창가에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선선한 바람이 좋다. 요즘 주로 미팅이 많아 문 닫아놓고 미팅하는데 아이 소리, 강아지 소리가 미팅 중간중간 끼어든다. 그럼 누군가 외친다. "어디서 개소리야?" 멍멍.


오늘은 오픈하고 토론하는 미팅이 있어 처음으로 화상 미팅을 했는데(항상 모두 카메라 끄고 미팅) 하아.. 가족 외에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대화한 게 얼마만인지.. 반가웠다. 사람이 그립다. (눈물 ㅠ)


오후 12시

아기다리 고기다리 점심시간이다. 회사에선 12시에 나가면 엘리베이터가 붐벼 11시 반에 나가는 게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는데 재택근무하니 12시 땡! 종 칠 때까지 일하게 된다. 나름 다이어트 중이라 탄수화물 줄인다고 곤약현미밥을 데워 간단한 반찬과 가볍게 식사를 한다. 그리고 남은 이십오 분의 시간에는 좋아하는 유튜버의 일상을 한 편 보고 양치하고 커피를 준비해 오후 근무를 준비한다.


오후 1시

한 동안 바쁜 게 소강상태였는데, 요즘 다시 바빠졌다. 미팅과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집중을 위해 문을 닫고 일한다. 집에 아이와 조카까지 두 아이들이 있어 아무래도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학교 수업도 봐주고 싶고, 중간중간 놀아도 주고 싶지만 나는 엄연히 근무 시간. 급여를 받으니 아쉬운 마음은 문을 닫고 잠시 접어두고, 일 해야지. 


오후 6시

바쁜 하루가 끝났다. 방문을 열고 퇴근한다.

계획대로라면 바로 홈트 유튜브 영상을 틀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 순간 건너뛸까? 하는 유혹에 휩싸인다.

내 안에 내가 또 있다. 한 명의 나는, '아침에 요가했잖아. 오늘은 쉬어도 돼.'라고 나를 꼬신다면, 나머지 하나는 '안돼. 지금 너의 뱃살을 봐봐. 여기서 포기하면 너는 내일도 포기할 거야. 너의 휘청거리는 의지를 설마 믿는 건 아니겠지?' 하며 나를 설득한다.


그래. 운동하자.

도저히 운동을 건너뛰기엔 심각하게 살이 붙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를 제외하고 성인이 된 후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으니 운동을 건너뛸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하루에 몇백 걸음이나 걸을까 말까 한 재택근무자 아닌가.


유명한 홈트 유튜버인 땅끄 부부의 영상을 틀고 열심히 따라 한다. 30분으로는 운동량이 모자라는 것 같아 스쿼트도 50개 더 하고, 옆구리 운동도 50개씩 더 한다. 


땀이 쭉 나는 게 개운하다. 운동은 하면 참 좋은데 시작하기 전까지는 왜 이렇게 힘들까.


오후 8시

아이가 사촌언니랑 노는 새에, 시간이 나서 요즘 코로나로 화실에 못 나가니 시작한 미술 인강을 듣는다.

한참 소묘에 빠졌는데 리듬이 끊겨 아쉬웠는데 열심히 선 연습을 하니 좋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역시 화실에 가서 집중하는 것보다 못하다.


얼른 삶이 정상이 되어, 화실도 가고 저녁에 강아지 산책도 나가고 싶다.


오후 9시

운동과 취미생활도 했으니 이제 심심해진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들은 내게 화장을 해주겠다고 한다.

11살 조카의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초등학생의 실력이 의심스럽지만 아이들이 모바일 기기만 붙들고 있지 않는다면 내 얼굴 하나 희생하겠다.라는 마음에 얼굴을 맡겼다. 각시탈이 되었을 내 얼굴을 상상했으나 웬걸.

꽤 세련되게 화장을 해주었고 그냥 지우기 아까울 정도였다. (나보다 나은데?) 그러나..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 금세 내 얼굴에 조커처럼 입술을 그리고 양볼에 달팽이 두 마리를 그려놓고 "자~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멘트까지 시킨다. 그래 까짓 껏. 쏘우 한 편 찍자.


오후 11시

한참을 노느라 흥분한 아이들이 잘 생각이 없다.

좀 전까지 깔깔대고 같이 놀았지만 태세 전환하여 엄한 목소리 한 번 내니 쪼르르 자러들 간다.


이제 나도 눕는 시간.

내일도 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


그래도 아무 일도 없고, 아무 탈도 없는 일상에 감사한다.

내일은 코로나 확진자가 확 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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