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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Dec 09. 2020

딸, 너는 다 이유가 있구나?

사춘기 올랑 말랑 10살 딸과의 대화

사춘기가 온 것일까? 열 살인데 설마 벌써?

요즘 아이들은 빠르다 하던데..


하루에도 여러 번 감정의 널뛰기를 하는 딸 덕분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요즘이다.

재택근무 중이라 낮에는 조용히 업무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짜증과 고함이 섞인 소리는 기어이 방문을 열고 참견하게 만든다. 처음엔 부드럽게 접근하지만 설득이 안 되는 딸의 논리와 주장에 결국 벌컥 화를 내게 된다. 무엇보다 학교에 가는 게 옵션이 된 거 마냥 가기 싫다고 버팅기는 아이의 모습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언젠간 올 거라 생각했고, 그때가 되면 현명한 엄마가 되어 아이 마음을 보듬어주고 아이가 가정 안에서 무사히 사춘기를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늘 다짐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 때에 비해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있는 딸은 비교도 안되게 똑똑해졌으나 아직 성장 중인 뇌는 그것들을 옳게 표현해내지 못한다. 폭발하는 호르몬 변화를 짜증과 거친 표현으로 승화하여 온 식구를 들었다 놨다 하는 딸의 모습에 난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갈피를 잃고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땐 아직 귀여운 아이일 뿐인 딸..

내가 너무 앞서갔나?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야 아니야 사춘기가 왔네 왔어. 하게 되는 행동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이 낯설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아이와 바람이 쐬고 싶었다.

몇 번이고 아이에게 외출하자고 했으나 유튜브 시청과 그림 그리기에 빠진 딸은 늘 거절했었다.

그래서 아이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줄 알았다.


그래도 10년 전에 가보고 언젠가 아이와 같이 가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아침고요 수목원 별빛 정원은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 1월이 되면 더 추워질 거고 연말이 되면 사람이 많아질 테니 개장한 지 며칠 안 된 월요일 저녁이 적당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아이를 태우고 아침고요 수목원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아이의 짜증에 울컥한지라 운전을 하고 한 동안은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재즈를 틀고 아이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한 뒤,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꼬마화가는 요즘 왜 학교에 가기 싫어? 엄마에게 이유를 알려줄 수 있어?"

"응.. 마스크를 오래 쓰고 있어서 힘들어. 불고기를 먹으면 불고기 냄새가 나서 좋은데 어쩔 땐 안 좋은 냄새가 나. 그리고 콧물이 나도 닦을 수가 없어. 또 학교 친구들이 마스크를 쓰고 쳐다보는 게 날 노려보는 거 같아. 그리고 또 나는 친구가 없어. 친구를 사귈 수도 없어. 학교에서 말하면 안 돼.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곳이며,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며 훈계만 늘어놨었구나. 게다가 다른 애들은 다 가는데 너는 왜 그러냐며 몹쓸 비교까지 하며 아이 마음을 후벼 팠구나.


아이도 다 이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가 몰랐네. 말해줘서 고마워. 마스크는 걸이에 걸어서 여분으로 넣어줄게. 너무 괴로우면 새 걸로 바꿔서 써. 그리고 친구들이 노려보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어른들도 마스크로 표정이 가려지다 보니 더 유심히 보게 되거든. 그게 노려보는 걸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친구 문제는 지금 코로나로 모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엄마가 더 좋은 친구가 되어 줄게. 코로나 끝나면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놀러도 가자."


활짝 웃으며 알았다는 아이..

아.. 나는 왜 아이랑 차분 대화를 해볼 생각을 안 했을까..

물론,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아이가 거부하면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었다.

외출도 몇 번이고 시도했다. 아이가 거부하면 더 이상 아이와 시간을 따로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결정의 책임을 던져주고, 회피를 했던 거다.




수목원에 도착하여 우리는 차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처음 먹어본 아이는 자기는 앞으로 불고기 버거만 먹을 거라며 입 짧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햄버거 하나를 다 먹었다.


그리고 별빛정원에 들어선 순간..

아이는 팔을 벌려 뱅글뱅글 돌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힐링이 필요했어.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


아이 입에서 행복하다는 소리를 들은 게 얼마만이더라.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는 나의 마음은 더 행복해졌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았고, 힐링이 필요했다는 아이의 말에서 부쩍 자란 아이를 느꼈다.


우리는 2시간 여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다.


2009년의 나와 2020년의 딸






아주 조금 아이의 사춘기를 맞을 용기가 충전된 느낌이다.

물론 다녀온 이후에도 아이의 짜증과 감정의 널뛰기는 여전하다.

나의 버럭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아이의 짜증 안에 이유를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레벨업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레벨업의 퀘스트는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사춘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 또한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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