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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n 07. 2021

아이도, 나도 무너진 밤

공감과 내려놓기가 필요한 시점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머릿속에 고민과 생각은 터져 나갈 듯 많았지만, 고민은 풀리지 않았고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딸과의 불화'이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의 불화의 시작은 항상 어른들이 이해하기 힘든 아이의 행동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할 때의 반응이 확실히 달랐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집중력은 어른이 봐도 감탄할 정도였으나, 싫어하는 것(정해진 시간에 교육 기관에 가기, 씻기, 외출하기 전에 준비하기 등)을 할 때는 상담이 심각하게 고려될 정도로 어른들의 진을 쏙 빼놨었다. 크면 나아지겠지 했으나 11살이 된 지금 더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자기 입장만 주장하며 고집을 피는데 그게 참 듣기가 힘들 정도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원하던 외출이고 분명 좋아할 곳임이 확실한데도, 막상 준비하려니 귀찮은 거다. 그러면 TV 앞에 바짝 붙어 앉아 꼼짝을 하지 않는다. 이제 출발해야 하니 옷 입자~ 씻자~ 하면 퉁퉁 부은 얼굴로 '거기 가면 나한테 이득이 뭔데?' '가면 재밌을 거야. 그게 이득이지 어떤 다른 이득을 말하니?' '그게 무슨 이득이야? 나한테 이득이 뭐냐고?'.. 이렇게 "이득"에 관해서만 수십 번 같은 질문을 하면, 처음엔 웃으며 대답하고 회유하다 결국 화를 내게 된다. '너는 항상 이득이 있어야 움직이니? 엄마랑 할머니랑 재밌는 시간 보내고, 너 좋아할 만한 곳인데 왜 이득을 따지는 건데?!! 가지 마!! 나도 가면 힘들어! 안 가면 나도 쉬고 좋지! 엄마도 운전 안 하고 돈도 안 쓰니 더 좋네!! 집에 있자!!'  결국, 어른답지 못하게 나도 못된 말을 쏟아내게 된다. 


또 다른 예로, 할머니와 나에게 언젠가부터 명령조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입혀, 이거 줘, 이거 해, 신겨, 머리 말려..' '어른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 이거 주세요~ 해야지' 하면, '~요 빼!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최대한 부드럽게 '예의'에 대해 설명해 보려 하지만 이미 귀를 닫은 아이에겐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엔 샤워하다 물 온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나에게 물을 뿌리거나, 할머니를 때리는 등의 폭력적인 반응도 늘기 시작했다.


위의 예와 유사한 일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벌어지며, 우리 가족의 마음은 병들어갔고 아이를 잘 못 키운 자책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고민도 많이 되었지만, 뚜렷하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원인과 원망 거리만 찾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젯밤 갈등의 하이라이트를 찍었고, 뭔가 아이와의 관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실마리도 찾아 글을 쓰게 되었다.



날씨 좋던 일요일,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외출하면, 가기 전엔 힘들어도 즐거워하는 것을 잘 알기에 또 '이득'을 따지는 아이를 잘 구슬려 장흥 나들이를 나섰다. 아이의 고집에 정말 다 그만두고 집에 있자고 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의 외출에 외출복을 빼입고 기다리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에 화를 참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가는 차 안에서 배고프다. 왜 이리 오래 걸리냐 투덜투덜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들을 수 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형제 없이 혼자 노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즐거워하니 너무 안쓰러워하지는 말자.. 하며 즐거운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나름 완벽한 하루였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아이는 점심과 저녁을 배불리 먹었고, 야외 활동도 실컷 했으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나의 어설픈 그네 타는 모습에 깔깔대던 아이의 웃음소리도 정말 오랜만이라 뭉클할 정도였다. 그러나, 잠자리 시비로 완벽한 하루는 실패로 돌아갔다. 늘 자기 전에 아이가 양치하고 세수 후 잠옷으로 갈아입으면 내가 책을 읽어주는데, 잠자리에 들게 하기 위해 씻으라 하니 주로 사용하는 2층 욕실화가 젖었고, 아래층 화장실도 젖었다며 찝찝해서 씻기 싫다고 고집을 핀다. '그땐 얼른 네 발에도 물을 끼얹으면 어떨까? 어차피 발을 씻어야 하니.. '해도싫다 한다. 좋은 말로 몇 번 아이를 설득했지만, 나도 하루 종일 외출에 너무 피곤한 상태라 '발을 씻으면 욕실화가 젖는 게 당연한 거지! 너 왜 이렇게 까다롭니? 난 피곤해서 잘 테니까 오늘은 책 못 읽어줘. 그러니 네가 알아서 씻고 자!' 이러고 내 방에 들어가 진짜 잠이 들어버렸다.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에 눈을 뜨니 문 밖에서 아이가 화가 잔뜩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아이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듯한다. 잠에서 덜 깬 상태에 나도 짜증이 올라오던 참이라 내려가 봤자 좋게 대화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다시 잠을 청해보려 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끼긱 끼긱 끼긱'. 주무시고 계시던 엄마도 깨는 듯하여 내려가 보니 지구본에 연결된 고리를 계속해서 돌리고 있다. 그게 듣기 안 좋은 소음을 내는 걸 알면서도 조용한 새벽, 일부러 소리를 내며 온 식구를 깨우고 있었다. 내려가 이유를 물어보니 말이 없고, 노려보며 왜 못하게 하느냔 식이다. 얼른 자라며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점점 정신이 맑아지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던 참에 이젠 공을 튕기기 시작했다.

배구공이라 꽤 무거운 데다 아래층에 사람도 살고 있는데, 그 새벽에 울리는 공 소리는 과히 컸다. 여기서 내가 이성을 잃었다. 온 집안 불을 환히 켜고 새벽 1시가 넘어 소음을 통해 불만을 표출하는 아이에게 차분히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기엔 내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평소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지만, 그전에 할머니가 좋은 말로 설득하려는 것도 들었고, 그에 대해 비뚤게 대답하는 것도 위에서 들으며 다 참고 있었기에 내 안의 분노가 고개를 들어 파리채로 아이 허벅지를 때리고 말았다. 달려 나온 엄마가 파리채를 내 손에서 뺏자 아이 머리도 한 대 쳤다. 소리를 지르며 우는 아이가 그 순간 너무 미웠다.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한다. 그래 같이 가자. 툭하면 나를 신고한다 하고, 할머니를 때리며 자긴 촉법소년이니 괜찮다 하는 아이를 이번에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심리가 발동했다. 손목을 끌고 같이 지구대에 가서 내가 이러이러해서 아이를 때려서 왔으니, 경찰관 아저씨들이 판단해달라 하자고 같이 가자 하니 안 간다며 버팅긴다. 정말 지옥 같은 순간이었다. '그래? 그러면 나 혼자 가서 엄마가 너를 때린 거에 대한 잘못은 자수하고, 네 행동에 관한 것도 다 얘기하고 도움을 청할게. 나는 이제 혼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하고, 급하게 마스크만 하고 차키를 챙겨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차에 들어가 시트를 눕힌 뒤 누웠다. 밤새 차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불빛에 서늘한 기분이 들고, 기울어진 차 안은 그리 편하지 않아 정신은 점점 맑아져 갔다. 익숙하지 않은 새벽의 차 안은 아이에게 손을 댄 것과, 욕실화가 젖었다 할 때 그냥 마른 욕실화를 하나 더 갖다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그러면서 아이가 잠들었으니 들어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기 까지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와 불화를 겪을 때마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단순히, 빨리 사춘기를 겪는 걸까? 하며 사춘기 관련 전문 서적도 여러 권 읽었다. 책에서 나온 사례와 유사한 행동을 아이에게 발견할 때면, 그래! 원인은 사춘기구나! 하며 책에서 배운 대로 "그 순간을 피하기, 다 지나갈 것임을 기억하고 크게 반응하지 않기.."등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는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기계가 아니기에 그런 방법 등이 매번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고, 일시적으로 그 순간을 잘 넘겼을 뿐,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면 하루 종일 붙들고 있는 유튜브 때문일까? 인터넷 사용을 저녁 6시로 제한하고 나머지 시간을 아이와 다른 걸 하며 보내보려 노력했지만 그것 또한 근본적인 해결안이 되진 못했다.


그러다 좀 전에 아이가 울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어. 소리를 낸 거는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걸 모르겠어??'


아이도 이유가 있었다. 이해가 100% 되지 않지만, 아이도 이유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점이다. 다만, 이번엔 아이의 말에서 다른 걸 찾아냈다.


아이는 시간이 늦어 내가 피곤한 걸 모른다. 이미 잠이 든 상태에서 깨는 게 힘이 든다는 걸 모른다.

자기의 고집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들을 깨우기 위해 한 행동(소음 내기)이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말속엔 항상 '나'만 있었다. 


아.. 아이에게 '공감' 능력이 부족하구나. 그리고 차에 누워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요즘 인터넷, SNS 세대에게 부족한 공감 능력, 그리고 한참 공감능력이 발달해야 할 아이들에게 많이 발견되는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와의 공감'이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도 너무 당연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모습을 돌아보니, 늘 아이의 문제 행동에 따른 해결책만 고민했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려 한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아이가 공감받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을 이제 점점 더 거칠고 자극적으로 표현해내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책과 후회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 이제 아이와 어떻게 더 공감하고 아이가 그를 통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를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발달시킬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6월 말에 전문 의료기관의 상담이 예약되어 있다. 상담 전 문제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간 거 같아 다행이긴 하다. 이전의 감정들은 모두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마침 우윤정 작가님의 '미니멀 감정 육아' 책을 선물 받았다. 폭풍 같은 주말을 보내느라 아직 시작 못했지만 오늘부터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다.)


사랑하는 딸이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아침에 눈을 뜬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내 허리를 와락 끌어 안았다. 

그래, 우리 같이 노력해보자.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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