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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06. 2021

#05. 캠핑 준비를 위한 정신승리법

캠핑이 좋은 걸까? 캠핑용품 사는 게 좋은 걸까?

7월 초, 즐거웠지만 끈적한 2박 3일 캠핑에서 돌아와 당분간 여름 캠핑은 쉬어야겠다고 다짐했었고, 역대급 지독한 폭염을 겪어 보니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https://brunch.co.kr/@puppy3518/47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니 이제 다시 캠핑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지난번 다녀온 강화도 햇솔 캠핑장 예약부터 하고, 천천히 가을 캠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기억을 더듬어 뺄 건 빼고(팔았다) 더할 건 더하다 보니(샀다) 이건 좀 과한데? 싶고, 순수하게 아이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던 초기 목적이 캠핑 용품 지름으로 변색된 건 아닌지 돌아보기 위해 끊임없는 지름의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정신승리가 될지 자기반성이 될지.. 두고 봐야겠다.




나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부족한 걸 찾아 부지런히 개선해 나가는 타입으로, 불편하거나 눈에 거슬리면 일단 해결을 해야 한다. 업무에선 그런 성향이 긍정적으로 발현되지만, 개인적인 삶에선 과한 지름으로 연결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캠핑은 어땠을까? 

(아쉬운 점 위주로)


짐에 치이는 느낌이 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캠핑을 하는 건데 무거운 짐들을 옮기다 진이 빠졌다. 특히, 돌돌 말렸을 뿐 가장 길고 무거웠던 우드 롤 테이블은 정말 후회되는 아이템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보던 사진들처럼 예쁘게 세팅해놓을 여유도 없고, 아이가 흘리는 음식물들이 사이사이로 쏙쏙 빠져 위생적이지도 않았으며, 틈새를 물티슈로 닦다 보면 귀찮기도 했다. 물론, 집에 캠핑용품을 보관할 공간이 있고 엘리베이터로 편하게 옮기고 번쩍번쩍 들 체력이 있다면 하나쯤 있어도 좋은 아이템이지만, 늘 차에 두어야 하고 차에서 빼려면 집까지 들고 옮겨야 하는 40대 여자인 나에게 좀 버거웠다. 그래서 당근행 기차 태워 보냈다.

그리고, 늘 품절인 유명 브랜드의 초경량 테이블을 아주 어렵게 구매했다. (그냥 갖고 싶었던 것 같기도)

추가로, 부피가 큰 의자는 옥상에서 쓰기로 하고 테이블과 같은 브랜드의 초경량 체어도 구매했다.


멀쩡한 걸 저렴히 보내고 추가 소비를 했다는 게 찔렸지만, 우드 롤 테이블에 비해 깃털 같은 무게와 삼각대 정도의 작은 부피에 대한 감동으로 죄책감은 자연히 상쇄되었다. [정신 승리 사례 1]



이동할 수 없음이 답답했다.

하루 종일 놀아서 좋았지만, 다음 2박 때는 낮에 주변 관광도 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차와 텐트가 붙어 있으니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도킹 텐트를 자립시킬 수는 있다. 가격이 비싼데도 우르사 텐트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차와 연결된 부분을 분리하고, 차를 빼고, 폴대를 끼어 자립시키는 과정! 돌아와 그 과정을 반대로 하며 차를 제 위치에 다시 주차하는 것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서 차 옆에 별도로 설치할 쉘터형 텐트를 추가 구매했다.

(쉘터에서 자도 되지만, 차에서 자면 고급 소파에서 자는 것 같다는 아이의 의견을 수렴하여 차박은 유지)


이젠,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가 주변 구경을 하고 들어와 나머지 캠핑을 즐기면 된다. 

트렁크 명당자리를 새 텐트에게 내어 주고 옥상 구석에 자리 잡은 기존의 텐트는 지인을 초대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하기로 한다. 누군가 초대한다면 주로 어른 1, 아이 1 구성일 거고, 아이들만 차에 재울 수 없으니 어른들은 도킹된 텐트에서 자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난 기존 텐트를 버린 게 아니다. 캠퍼라면 텐트 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정신 승리 사례 2]



다음 캠핑은 어떨까?

(사고 싶은 것 위주로)


불멍을 해야만 한다.

그동안 짐 내리고 세팅하는 것만도 버거워 불멍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미 3월에 화로대, 토치, 불집게, 장작까지 구입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깜짝 놀라 다음엔 꼭 불멍을 하기로 한다. 추가로 구입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굳이 없는 걸 찾아 소가죽 바비큐 장갑 구입. 

목장갑은 1회용이고, 지구를 살려야 하니까.. 제로 웨이스트가 트렌드니까..음.. [정신 승리 사례 3]


이제 곧 추워질 것이다.

3월의 텐트 안이 꽤 추웠던 걸로 기억난다. 겨울용품은 여름에 구입해야 한다. 여름 시작 무렵 캠퍼들에게 핫한 서큘레이터 구매 실패를 교훈 삼아 미리 난로를 구입했다.

정말 부피가 큰 난로는 사고 싶지 않았지만, 겨울에도 캠핑을 다니려면 꼭 필요한 소비였다고 생각한다.

난로를 사고 났더니 기름통도 사야 하고, 난로 위에서 물을 끓여 자연 가습을 해 줄 주전자도 필요했다.


내가 국민학생 시절, 한옥집 마루에 있던 난로 감성을 아이도 겪어본다니.. 그것만으로도 되었다. [정신 승리 사례 4]


예쁜 살림살이를 갖고 싶다.

엄마와 같이 살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바로 부엌 살림살이다.

내가 우리 아이 나이 만할 때도 썼던 접시와 수저가 아직도 상에 나오는 걸 보면서, 예쁜 그릇 세트를 사 드리면 예쁜 그릇 + 오래된 그릇이 함께 상에 올라온다. 그나마 최근엔 많이 관여하여 집 살림살이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통일되지 않은 색감과 디자인의 그릇들은 내 눈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캠핑에서는 예쁜 그릇만 쓰고 싶다. 이것이 예쁜 우드 와인잔을 산 이유이다.

그렇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에 정신승리법이 잘 발동되지 않는다. 솔직히 인스타그램 보고 예뻐서 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나에겐 반품의 기회가 있다. 다시 생각해보자. [자기반성 사례 1]


전기 부자가 되고 싶다.

노지로 다니는 게 아니라 캠핑장 전기를 쓰면 되기에, 파워뱅크는 필요 없었다. 대용량(5만) 배터리도 늘 100% 충전해가지만, 하나도 안 쓰고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차랑 텐트랑 분리될 테고 아직 이동식 히터는 이르기에 전기매트를 써야 할 거 같은데 차에서 어떻게 전기를 쓰지? 하다 이전부터 마음속에 찜해두었던 파워뱅크를 사고야 말았다. 사실 잘 때는 릴선을 차로 옮겨 전기매트를 쓰면 되는데 그냥 갖고 싶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금은 준비를 바리바리 해 캠핑을 떠나지만, 언젠간 아이와 경치 좋은 곳에서 스텔스 차박도 해보고 싶다. (휴대용 화장실 사용하고 차 안에서 도시락 먹고 우리가 왔다 간지 모르게 조용히 잠만 자고 오는 차박. 뷰만 즐길게요)

스텔스 차박을 하게 되면, 정말 파워뱅크가 필요할 것이기에 미리 샀다고 내 안의 이성을 설득해보지만, 당장 필요한 게 아니므로 조금 더 고민을 해보라 말한다. 파워뱅크도 아직 반품의 기회가 있다. [자기반성 사례 2]


이 외에도.. 

자잘한 것들을 많이 샀다. 


추워질 테니 이소가스도 추울 거라 이소가스 워머, 냄비 받침이 없어 불편해서 냄비받침 (다이소에서 천 원이면 사지만 갬성이 달라요), 쉘터의 절반은 좌식으로 꾸밀 거라 매트.. 기타 등등





난 참 잘 사는 사람이다. (사다 = buy)

아이를 낳고 키울 때도, 재봉틀을 처음 배울 때도, 그림을 배울 때도.. 항상 장비병 끝판왕처럼 모든 걸 다 갖춰야 맘이 편해지곤 했다.


이전엔 지름의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후회와 자책으로 힘들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 나이 40이 넘어서도 달라진 게 없는 내가 유쾌한 건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나의 결정과 행동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또 사고 싶은 나이기에 이젠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

나는..
불편하고 부족한 상황을 개선해야 하며, 그 과정을 즐긴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
불치병인 장비병이 있다. (20년 경험상 안 고쳐진다)


그래, 이왕 사는 거 내 맘에 드는 걸로 오래오래 쓸 것으로 사면 되지.

그러면 되지!




이 글은 정신승리법과 자기반성이 싸워 4:2로 정신승리법이 승리했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백신 일정으로 이 좋은 날씨에 당장 떠나지 못함이 아쉽지만, 9월 넷째 주 첫가을 캠핑을 갈 예정이므로 이렇게 준비하며 즐겁게 기다립니다.


딸이 가본 강화도는 치킨집과 캠핑장뿐이었는데, 이번엔 바다도 산도 절도 같이 다녀볼 계획이에요.

요즘 아이가 많이 편안해진 상태라 그런지 더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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