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치 Sep 28. 2021

#06.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타프를 치고..

초보 모녀 캠퍼의 야무진 꿈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두 달만의 캠핑이다.

학교에 갈 때마다 힘들게 하던 아이라 이 날도 그랬다면 캠핑을 취소하려 했었지만, 연휴 간 전쟁을 한 번 치르고 스스로 약속을 해서 인지 기분 좋게 등교를 했다.


https://brunch.co.kr/@puppy3518/49


오전 근무를 마치고 강화도 햇솔캠핑장으로 출발하려는 찰나 그렇게 준비를 철저히 했건만 '모기'에 관한 어떤 것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홈매트와 벌레퇴치제, 모기약을 챙겨서 출발했다. 이 생각이 떠오른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가을 모기는 꽤 독한 놈이었던 것이다.



첫째 날

오후 5시 캠핑장 도착!

한 번 와본 곳이라 바로 주차하고 오는 내내 라면 먹고 싶어 노래를 부르던 아이에게 급하게 라면을 끓여줄 준비를 했다. 텐트와 타프가 새것이라 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 요기를 해두는 것도 괜찮겠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자, 평소 식탐이라곤 1도 없던 아이가 와서 킁킁대고 더 끓이면 면이 꼬들꼬들해지지 않는다며 빨리 달라 성화다. 역시 밖에 나오니 아이가 잘 먹는군! 이게 캠핑의 묘미지~ 하며 뿌듯한 마음에 엄마가 하시던 대로 마지막에 계란을 풀어 주었다.


짜잔~ 하고 아이에게 대령하자, 비려서 못 먹겠다고 젓가락을 놔버린다.

빨리 주고픈 맘에 계란을 풀고 바로 불을 끈 게 화근인 걸까? 아니면 유정란이어서 그런 걸까? 


까다로운 딸의 입맛과 냉정한 반응에 뿌듯한 마음은 쏙 들어가고 불만이 고개를 든다. 


그래, 타프나 치자.

이번엔 차와 도킹된 텐트가 아닌 쉘터형 텐트와 텐트 위에 칠 타프를 새로 마련했다. 이유는 이전 텐트도 좋았지만, 차로 이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고, 아직 뜨거운 햇살에 그늘막이 필요할 것 같았다.


텐트야 폴대를 연결해 끼면 된다고 쳐도, 타프는 처음이라 블로그와 유튜브를 보며 끈 묶는 법, 타프 세우는 법을 숙지하고 간 상태였다.


우선 폴대들을 쭉 꺼내보니, 일반 텐트 폴대의 두 배이상 두껍고 무겁다. 

그래도 안 되는 게 어딨겠어. 차근차근해보자! 하며 미리 공부한 대로 스트링을 꺼내 모두 묶고 같은 사이즈의 폴대끼리 연결을 해두었다. 준비 끝! 쉽네!

이때까진 쉬웠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까 실패한 라면이 못내 아쉬웠는지 아이가 다시 끓여달래서, 이번엔 계란을 넣지 않고 끓여주었다.

합격! 하며 엄지 척하는 모습에 이전의 불만은 쏙 들어가고 사랑스러움과 뿌듯함 100% 충전!

1년에 두세 번 끓일까 말까 한 라면.. 물이 좀 많지요?


아이가 먹는 사이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중심을 기준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팩을 박았다. 이제 가운데 폴대에 스트링과 스킨을 걸고 세우면 되는데..

어어.. 이게 내 마음대로 안된다. 폴대는 크고 길었으며 스킨은 무겁고 휘청거린다. 아무리 중심을 잡고 세우려 해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짱짱해야 할 스트링은 점점 풀려 땅에 축 쳐져 버린다.


SOS!

라면을 다 먹은 아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난번과 달리 선뜻 와서 폴대를 잡아준다. 그 사이 나는 스트링을 당기고 얼추 한 개를 간신히 세웠다. 이제 반대편을 세워야 하는데.. 아무리 폴대와 씨름을 해도 잘 세워지지 않는다. 어두워질 때까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팩 위치를 조절하고 스트링을 당겨봐도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양쪽 폴대를 세우니 밤 8시가 다 돼간다. 그러나, 가운데가 축 쳐져 타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양이 형편없다. 밤이 되니 가을 모기들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아이가 모기에 너무 물리고 있어 빨리 텐트를 쳐야 했다.


축 쳐진 타프 아래로 기어 들어가 새 텐트를 치는 게 가능한 걸까?

불가능했다. 랜턴을 두 개나 키고도 어찌나 어두운지.. 입구도 못 찾고 시간만 보내다.. 이제 포기해야 하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빠른 포기! 타프 철수

이상과 현실 (왼쪽 사진 출처: 아베나키 홈페이지)


포기하자고 마음먹으니 이리 쉬운 것을.. 

쉘터 텐트는 생각보다 치기 쉬웠고 아이를 들여보낸 뒤 홈매트를 켜주니 좀 안심이 된다. 그 사이에 나도 여러 방 물렸는데 산과 바다에 사는 모기라 그런지 엄청 독하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부은 상태)


시간은 벌써 9시 반.

급하게 아이에게 삼겹살을 구워 주었고, 내 몫으로는 닭꼬치를 구웠다.

주변은 난장판이지만 그래도 밖에서 먹는 식사니 맛있게 먹어볼까? 했으나..

처음 써보는 무쇠 팬은 삼겹살을 튀김으로 만들어 주었고, 닭꼬치를 시식할 시간도 없이 삼겹살의 덜 딱딱한 부분을 찾아 잘라주느라 나의 꼬치는 식어만 갔다.


식사를 마친 아이가 영화를 보겠다 하여, 영화를 틀어주고 편하게 먹고 정리 좀 해볼까? 하고 텐트 안에 스크린을 설치하여 영화를 틀어주었다. 말은 간단했지만 스크린 설치, 빔 프로젝트 설치, 스피커 블루투스 연결, 와이파이 연결, 영화 검색 후 재생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영화가 잘 나오는 걸 보고 드디어 밖에 나오니..

불청객이 내 꼬치를 입에 물고 쳐다보고 있다. 이미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는 베이컨 꼬치와 뻔뻔하게 친구까지 불러 파티를 벌이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니 어이가 없다. 고양이가 어디까지 입을 댄 지 모르니 테이블에 있던 모든 음식을 갖다 버리고 와인 한 잔 하며 짐 정리를 했다.


이틀 밤 내내 불멍을 할 계획이었으나, 불멍을 준비할 기운이 없다. 

아쉬운 대로 옆집 불멍이라도..


가성비 좋은 옆집 불멍

좀 멀긴 하지만, 그래도 불멍은 했다. 

다만, 옆집 분들과 눈이 마주친다면 곤란할 수 있다. 모기 때문인지 매쉬 셀터 안에서 불멍을 즐기시는 거 같아 다행이다. 


무거운 타프와 생고생을 했더니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아이 옆에 누워 영화를 끝까지 같이 보고 바로 잠이 들었다. 전기매트를 켰지만 이불이 덮어지지 않은 부분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좀 추웠고, 이불을 아이가 말고 자서 이불을 하나만 가져간 걸 후회하며 핫팩에 의지해 밤새 자다 깨다 했다. 


 


둘째 날

엄마는 요리 바보

어제 타프와의 씨름으로 인한 진한 근육통이 있고 밤새 조금 춥긴 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는 텐트 안에서 자는 게 힘들진 않았다. 아마 차에서 자려고 준비한 것들을 몽땅 바닥에 깔아 꽤 푹신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근육통 있는 상태로 추운 방에서 자는 느낌이랄까?


쿠팡에서 산 냉동 소떡소떡을 구워 아침식사를 차려주었다. 조금 먹다만 아이의 피드백은 소스가 맵고 떡이 질겨 더 이상 못 먹겠다..이다.


어제 라면은 비리고, 삼겹살은 딱딱하고, 소떡소떡은 질기기까지..

사실 아이의 예민한 입맛을 탓하기엔 내가 요리력이 많이 떨어지긴 하다.

캠핑장도 배달의 민족이 오면 참 좋을 텐데..


강화도 관광

둘째 날엔 강화도 관광을 하겠다는 목적 하에 텐트도 새로 샀지 않은가..

어제 널어 놓은 타프와 짐들을 대충 정리 후 바로 '조양 방직'으로 출발했다.

강화도가 작은 줄 알았는데 약 30분을 가야 한다. 

소문대로 조양 방직 카페는 너무나 훌륭하고 재밌는 곳이었고, 아이는 사진 찍기를 마음껏 허락해주었으며 수다쟁이가 되어 "엄마 엄마 여기 와서 봐봐~ 엄마 나 좀 찍어줘. 엄마 여기 서봐. 엄마 엄마.."


이렇게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힘들어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우리 취향에 딱 맞았던 조양방직



생각보다 조양 방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 점심 먹을 시간이 다 되어 근처의 서문 김밥에서 김밥 2줄을 산 뒤 차에서 먹었다. 생활의 달인표 김밥이라서 그런 건지, 식욕이 다 한 건지 딸도 나도 맛있게 먹고 이제 교동 대룡 시장으로 출발.


교동으로 가는 길, 해병대 검문을 여러 차례 거쳐 드디어 도착.

도착하니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다. 강화도 저 멀리 이런 곳이 있다니..

어쩌면 작은 시장일 뿐이겠지만,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아이와 나는 교동이 마음에 쏙 들었다.


1인 5천 원짜리 바이킹을 보자 아이가 타자고 한다.

놀이기구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그중의 최악은 바이킹이요!라고 1초 만에 답할 수 있는 나에게 그 제안은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꼬마 바이킹이니 괜찮겠지.. 오랜만에 아이가 기분 좋은데.. 이 정도는 맞춰주어야지했건만, 출발 후 "사장님! 내려주세요!"를 외쳐야 했고, 메슥거림에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작지만 가볼만한 교동 대룡시장


이제 슬슬 피곤해진다.

얼른 캠핑장으로 돌아가 저녁을 해 먹고 불멍하며 쉬고 싶다.

그러나, 바다를 꼭 가야겠다는 게 아닌가.. 가는 길에 아이 저녁 메뉴인 치킨도 사야 하는데..


우선 캠핑장 근처 동막해변을 찍고 바이킹에 안 좋은 속을 부여잡고 간신히 운전하여 도착했다. 입구부터 빼곡하게 들어선 공용주차장의 차들을 보니 깝깝하던 참에 눈에 띄는 치킨집, 그리고 그 앞에 빈자리. 덕분에 치킨이 튀겨지는 동안 아이는 바다 구경도 할 수 있었고 치킨도 살 수 있었다. 이런 걸 일타쌍피라 하던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불멍

치밥을 하겠다는 아이의 식사를 차려주고, 나는 본격적인 불멍 준비를 했다.

원래 불을 무서워해서 부탄가스 사용하는 버너를 켜는 것도 꺼려했던 내가 토치에 가스를 연결하고 불을 붙이고 있다. 캠핑을 해보며 안 해본걸 도전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작 두 망을 다 태우고, 아이가 온 동네 나뭇가지와 낙엽을 계속 주어와 오래오래 불멍을 즐길 수 있었다.

예쁘고 따뜻한 장작불과 아이와 재밌는 수다에 하루의 피로와 그 전날의 근육통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쪼그려 앉아 낙엽을 줍던 아이.. 어릴 때처럼 웃긴 표정을 지으며 사진 찍어달란 아이..

이렇게 나왔으니 볼 수 있는 모습이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 어린왕자-



항상 캠핑 가면서 아쉬운 게 먹는 재미가 없다는 거여서 이번엔 남더라도 내 메뉴를 따로 준비하려고 생각한 게 닭꼬치와 소막창이었다. 그러나 닭꼬치는 고양이가 훔쳐갔고 기껏 준비해온 소막창은 좋아하지 않는 돼지 막창을 잘못 사 왔다. 청양고추를 잔뜩 썰어 넣었지만 그냥 기분만 낸 걸로 만족하기로..  


어떤 메뉴를 준비할까 고민하고, 주문하고, 들고 오고, 요리했으나 못 먹고 버리는 게 반복되니.. 다음엔 아이와 그 지역의 마트를 가서 장을 봐보면 어떨까 한다.


쉽게 준비할 순 있지만, 뭔가 손이 안 가는 냉동식품과 밀키트는 이제 그만 사야겠다.


 



캠핑 마무리

몸은 힘들었어도 많은 걸 경험한 의미 있는 캠핑이었다.

이 맛에 또 짐을 싸는 거겠지.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아기 때처럼 깔깔대었다.

폴대를 잡아주고, 고생하는 나를 보며 엄마 괜찮냐며 걱정해주었다.

혼자 햇반을 데워왔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보았기에 나와 대화거리가 하나 늘었다. (그 전엔 무섭다고 거부)

바이킹을 탄 지 얼마 후 하얗게 질리는 나를 걱정해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 계획을 얘기해주었다.


나는..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토치로 장작불 붙이기, 이소가스 연결하기, 텐트 치기)

그래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타프는 내가 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음을..)

나와 함께 여행 다니는 작은 꼬마친구가 있다는 게 든든했다.

아직 약한 딸을 더 많이 지켜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못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침낭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2박 3일 캠핑을 무사히 즐겁게 다녀왔고, 아이와도 더 많이 가까워졌다.


새침하게 차 안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던 딸이 밖으로 나와 망치를 들고 팩을 박아보려 하고, 무거운 폴대를 잡아주려 하고, 캠핑장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낙엽을 주어와 불을 지피며 놀던게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큰 변화였다. 더불어 앞으로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희망도 생겼다.


갑자기 당겨진 백신 일정으로 2주 후 캠핑을 취소하게 되었는데, 서운해하는 아이를 보니 가장 빠른 일정으로 얼른 예약해야겠다. 


다음은 아이가 사랑하는 강아지 밍밍이까지 셋이 갈 계획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캠핑 준비를 위한 정신승리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