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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r 14. 2022

캠핑 휴식기 프로젝트 3 (예쁜 나의 방)

쉼과 일, 모두 담기

캠핑의 꽃이라던 동계 캠핑을 과감히 포기하고 휴식기 동안 진행했던 마지막 프로젝트, 내 방 꾸미기가 마무리되었다.

캠핑 휴식기 프로젝트 1 - 감성 옥상 시즌2

캠핑 휴식기 프로젝트 2 - 반지하 아지트


4년 전, 2층에서 가장 큰 방을 사용하시던 할머니께서 작은 집으로 옮기시게 되면서 내가 이 방을 사용하게 되었었다. 할머니께서 깔끔하게 사용하셔서 도배, 장판만 새로 했고, 오로지 아이와 편안히 자기 위한 큰 침대, 아이에게 읽어줄 책과 내 책을 수납할 책장, 간단한 그림 그리기 등을 위한 작은 테이블만으로 방을 꾸몄었다. 아이는 늘 중학교 가기 전까지 나와 자겠다 했었는데, 생각보다 잠자리 독립은 빨리 이뤄졌다.


서재겸 아이 장난감 수납 목적으로 쓰던 방을 아이방으로 꾸며주고, 길어지는 재택근무로 어느덧 좁은 공간에 책상까지 들어오자 내 방은 가구를 위한 방이 되어버렸다. 나 혼자 쓰기엔 너무 큰 침대도 볼 때마다 갑갑하여 큰 침대를 빼고 방 구조를 바꿔야겠다 결심했다.


사면에 가구가 꽉 차 있던 이전의 방


사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산다면(또는, 사다리차가 가능한 집) 가구를 바꾸는 건 큰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 2층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길에 큰 창이 나있다. 따라서, 모든 가구는 대부분 조립식이었고 당시 침대 매트리스는 정말 감사하게도 가구 배송 기사님이 밧줄로 묶어 창문으로 끌어올려 주셔서 설치할 수 있었다. 우선 가구를 빼야 새로운 가구를 넣을 텐데.. 가구 빼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새로운 방의 컨셉은 일단 비우고 고민해보자.



매트리스 분해, 해보셨나요?

보기에도 참 크고 무거운 매트리스를 내려야 침대를 분해할 텐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여러 방법을 고민해 본다.


첫 번째, 밧줄로 묶어 내린다.

아빠 생전엔 동네 용달차 운행하시는 아저씨들이 얼마의 보수를 받고 가구를 내려주시곤 했었다. 그러나 그분들도 이젠 할아버지가 되었다. 다른 분을 알아봐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렸으나 밧줄은 안되고, 다 분해하여 내려주신다 한다. 이왕이면 온전한 모습으로 깔끔하게 내리고 싶어 우선 알겠다 하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큰 업체가 아닌 동네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해보았으나 요즘은 밧줄 이사 안 한다며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패스!


두 번째, 1층으로 던진다.

너무 위험하다. 뉴스에 나올 수도 있다. 패스!


마지막, 분해한다.

그래. 분해할 거면 내가 해보자. 집에 있는 공구를 총동원하고, 혹시 모르니 튼튼한 니퍼도 구매했다. 그리고, 큰 맘먹고 커터칼로 매트리스 배를 갈랐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매트리스 속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우선, 패브릭을 걷어내고 나니 부직포로 쌓인 스프링이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있다. 나름 잘 만들었군? 그리고 나도 참 깨끗하게 썼구나. 처음엔 어떻게 분해할지 잘 모르겠더니, 큰 프레임에 연결된 고리를 하나하나 틀어서 분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 무념무상으로 하나하나 뺐더니 어느새 스프링만 남았다. 스프링은 부직포를 쭉 뜯어서 칼집 낸 뒤 안에 있는 철사 스프링만 빼주면 된다. 은근 단순작업이라 재밌기도 했다. 엄마가 계속 도와주시고 싶어 하셨지만, 손도 안 좋으신데 다칠까 봐 말렸는데.. 어느새 부직포 몇 줄을 가져가 능숙한 솜씨로 분리하고 계신다. 우리 모녀, 정말 일할 땐 손발이 착착 맞는다.


약 세 시간에 걸쳐 매트리스 분해가 끝났고, 이후는 뭐 일사천리다.

2층 집 살면서 참 많은 가구를 조립했고 분해했다. 동그란 계단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그건 일도 아니다. 부지런히 아래층으로 분해된 가구를 옮기고 방을 비워나갔다.




살면서 도배하는 거 아닙니다

대부분 벽이 깔끔하여, 페인팅만 할까 했으나 화장실 앞에 있던 에어컨을 방으로 옮기면서 에어컨 있던 자리가 비어 버렸고, 반려견이 아기 때 열심히 장판을 파놓아서 땜빵한 흔적이 늘 마음이 아팠기에 이번 기회에 도배, 장판도 새로 하기로 했다.


다만, 벽지와 장판을 구입하고 시공 일정을 잡으려면 을지로에 나가야 하는데 3차 백신 몸살에 당첨돼버렸다. 극한 몸살에 힘들어하다, 3일째 되는 날 오한과 무기력함에 쳐지는 몸을 간신히 이끌고 나가 아무 데나 들어가 계약하고 다시 몸져누었다. (4차 백신? 안 맞으련다.)


일주일 뒤, 도배 전 날 오후 반차를 내고 방에 남은 짐을 다른 방과 작은 테라스로 몽땅 옮겼다. 비 소식이 없어 다행이었다. 약 30년 된 커튼레일도 이번 기회에 교체하고자 빼니 어릴 때 참 많이 갖고 놀던 커튼 고리가 눈에 꽂힌다. 부모님께서는 커튼을 만들고, 설치하여 우리를 키웠었다. 그래서 바퀴 달린 귀여운 고리(엄마는 '로라'라고 부르신다)는 자연스레 우리의 장난감이 되었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뭉클해진다.


새 집을 짓고 기뻐하시던 아빠, 아빠가 직접 설치한 튼튼한 레일..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 때가 꼬질꼬질한 로라들 중 하나만 보관하기로 한다.

옛날 고리(로라)가 더 좋아보인다.


드디어, 새벽부터 서둘러주신 도배사님들 덕에 도배와 장판을 하루 만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먼지도 많고 하루 종일 모르는 분들이 왔다 갔다 하니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가 너무 신나 하여 쉬하고 방해할까 묶어놔야 했고, 엄마는 집을 비우면 안 된다며 문 열어놔 추운 1층에서 벌을 섰고, 사춘기 초입 새초롬한 아이는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며 예민하게 굴어 나와 지하에서 시간을 보냈다. 식사는 시켜 지하에서 먹고, 식구들 모두 지친 하루를 보냈다. 다시 한번 느낀다. 살면서 도배하는 거 아니다.


깔끔, 깔끔

장판은 좀 더 세련된 걸로 하고 싶었으나, 다른 방과도 맞춰야 하기에 이전 것(단종)의 다음 번호를 골랐다. 거의 비슷하겠지 했는데 약간 노란 끼가 돌아 시골 펜션 같은 느낌이 살짝 든다. 그래도, 큰 일 하나를 끝냈기에 전 날 꺼내놓은 짐을 다시 옮겨놓으면서도 힘들지 않고 뿌듯할 뿐이다.


고르고, 또 고르기

틈날 때마다 가구를 골랐다. 방 사이즈는 많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동그란 계단이라는 제약이 있기에 무조건 계단으로 올라올 수 있는 사이즈여야 했다. 이제 조립식은 그만 사고 싶어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이 번에 방을 꾸미면 꽤 오래 써야 할 것 같아 제대로 고르고 싶었다.


침대의 조건

1. 통판으로 가로 세로 1미터 이하

2. 원목

3. 은은한 조명 포함

4. 수납공간이 있으면 금상첨화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사이즈가 커서 걸린다. 어쩔 수 없이 침대는 완제품을 포기했었으나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다 정말 내 맘에 쏙 드는 침대를 발견했고, 사이즈 또한 세로로 분리형이 아닌, 가로로 분리된 두 개의 통판이 연결되는 형태라 계단으로 옮길 수 있었다. 게다가 은은한 조명까지! 매트리스는 라텍스로 구입했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이제 그만~ 다만, 매트리스 사면서 딸 방의 것도 바꿔주기 위해 두 개를 샀는데 쓰던 것이 좋다 하여 두 개를 얹었더니 호텔처럼 꽤 높은 침대가 되어버렸다. (쓰다 보니 마음에 든다. 딸이 다시 가져간다면 서운할 듯)


꿈꾸던 작고 예쁜 침대


침대는 해결이 되었고, 이제 반대편에 쌓여있는 갈 곳 잃은 책들과 짐들을 수납할 가구도 골라야 한다. 재택근무가 한 동안 지속될 분위기라 나름의 공간 분리를 하여 일과 쉼, 두 마리 토끼 다 잡아 보기로 한다. 이전엔 공간이 안 나와 세로 폭이 좁은 책상을 써서 불편했기에 책상도 같이 교체했다.


책상과 책장의 조건

1. 폭은 1미터 이하 (침대와 동일)

2. 책장을 돌려 공간 분리 가능 (즉, 뒷면이 못생긴 합판이면 안 됨)

3. 책장은 높지 않을 것 (공간이 모자라면, 차라리 책을 줄이자)

4. 원목


신기하다. 찾으면 나온다. 수십 개의 책상과 책장을 장바구니 담았어도 쉽게 결정을 못하겠더니 결국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게 눈에 띄었고 아주 만족스럽다.


나름의 공간분리. 더 최선도 있겠지만, 이 정도도 만족!


보너스로, 못생긴 철제 수납장이 들어와 있던 화장실 구석 수납장도 바꿨다.

향기 코너





이렇게, 약 두 달간 방 꾸미기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물론, 가구가 다했지만 비우는 게 가장 큰일이었다) 오래된 주택에 살면서 어떻게든 깔끔하고 예쁘게 살고 싶어 참 많이 고치고 바꾸며 산다. 애증의 동그란 계단은 그것들을 10배는 더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찾으면 또 구해진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깔끔한 방에 들어가면, 참 기분이 편안해진다.

이래서 다들 공간을 꾸미고 사는 거겠지.


겨울 동안 큰 프로젝트 3개를 마치고, 이제 좀 쉬어볼까? 했으나..

따님의 오더가 내려왔다. 자기 방의 시커멓고 높은 책장을 낮은 하얀 책장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다.

이전에 내가 쓰던 건데, 그땐 아이와 내 짐이 많아 무조건 높은 가구를 샀었다. 내가 봐도 갑갑해 보인다. 이젠 가구를 키우기보다 짐을 줄여보기로 한다.


"그래 그래. 그런데 엄마 조금만 쉬었다가 해줄게"


틈틈이 아이 방 짐을 빼고 있다. 이번엔 정말 천천히 진행하다 후반에 속도를 내서 페인팅 > 가구 교체 순으로 아이 방을 꾸며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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