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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y 23. 2022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12살 소녀들의 생일파티

안녕하세요! 스위트 걸~이에요!

8명의 12살 소녀들의 떼창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며칠 전, 아이의 12살 생일파티에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등교거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힘든 시간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우리 가족의 상처도 회복되고 있어 기록으로 남긴다.




초등학교 적응은 무난하게..

딸은 유치원, 어린이집 모두 적응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유치원에서 수시로 오는 전화는 일상이었다. 그래도 정말 좋으신 선생님들 덕분에 유치원 생활을 즐겁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쉽지 않았다. 친절한 유치원 선생님도 안 계시고 친구들은 낯설기만 하다. 낯선 학교 생활에 등교할 때마다 엄마가 꽤 고생하셨던 기억이 난다. 8살은 엄마들끼리 친하면 아이들도 친구가 되는 시기다. 하지만 워킹맘인 나는 다른 엄마들과 어떤 연결 고리도 없었기에 같은 반 단체방에 처음 초대된 날 '안녕하세요'만 간신히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아이 생일을 하루 앞두고, 퇴근 후 대학원 수업을 듣다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쉬는 시간에 단체방에 글을 올렸다. "내일 저희 아이 생일인데 방과 후에 시간 되시면 초대할까 해요. 꼬마화가 생일파티에 올 수 있는 친구 있을까요?"


사실, 한 두명만 되어도 좋았다. 그러나 왠 걸. 너도 나도 다 올 수 있다 하는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려던 원래 계획대로 하기엔 인원이 꽤 많아졌다. (지금 기억으로 대략 10명 이상)

마음이 바빠졌다. 급하게 학교 앞 생일파티룸이 있는 트램폴린 카페를 예약했다. 


친구들 십여 명과 그들의 엄마, 어린 동생들까지 트램폴린 카페는 꽉 찼고 이런 생일파티가 처음인 아이는 태어나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엄마들과 인사를 할 수 있었고 아이에게도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생일파티룸의 노래방에서 '사랑을 했다'를 합창하던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하는 엄마라 늘 부족한 게 많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꽤 칭찬하고 싶었던 순간이다.


이렇게, 아이는 저학년을 무사히 넘겼다.


참 힘든 시기..

벌써 2년이 지났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되며 학교와 학원에 갈 수 없어 막연히 집에서 시간만 보내던 시간. 아이는 그렇게 3학년을 맞았다. 전 국민, 전 세계인이 혼란스러운 시기였기에 유독 내가 제일 힘들었어요!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 얄궂게도 그 시기가 새 학기였다는 것은 아쉽다. 새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적응하기도 벅찬 아직은 어린 10살, 게다가 적응이 힘든 예민한 성향의 아이에게 그 시간이 독이 되었음은 사실이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으나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고, 가끔 가는 학교에서도 마스크 쓰고 만나는 낯선 눈빛들을 아이는 꽤 경계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다행인 것은 코로나가 점점 심해져 대부분 온라인 수업을 했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그로 인해 잘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게 되고 친구와의 소통이 아예 끊어졌다는 것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도, 초대해서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 그렇게 아이는 외로워졌다.


그리고 4학년..

아이들 학습부진에 대면 수업일수가 더 늘었다. 그러나 이미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진 아이는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차라리 이유를 말하고 가기 싫다고 떼라도 썼으면.. 입 꾹 다물고 세월아 네월아 준비하는 아이를 보면 복장이 터졌다. 그리고 느지막이 간 학교에서는 수업이 시작되고, 수업 후 들어가는 교실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는 결국 교실 문을 열지 못한다. 선생님, 상담 선생님, 심지어 교감 선생님까지 아이를 설득해보지만 입 꾹 닫고 버티다 결국 할머니 손을 잡고 다시 집에 오게 된다.


재택근무를 하며,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그저 괴로울 뿐이었다. 지난 시련들과 사건들은 종종 기록을 해두었는데 지금 봐도 그때의 답답함이 훅 밀려온다. 


아이를 달래도 보고, 윽박도 질러 보고, 상담도 받아 보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정말 벼랑 끝에 선 기분이 이런 거구나. 다행히 정말 좋으신 담임 선생님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 표현으로 아이는 조금씩 좋아졌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친구들 덕에 아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싸에서 인싸로..

그동안 아이는 자신을 늘 아싸(아웃사이더)라 칭했다. 같이 쓰는 유튜브 내역에서 '친구 사귀기'를 검색한 흔적을 보았을 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러던 아이가 스스로 말한다. "엄마! 이제 나는 인싸(인사이더)야!"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자마 파티도 하고, 방학 때는 줌으로 소통하며 점점 밝아지는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의 모습이 달라졌다.


아침 7시 30분, 기상 후 바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바로 올라가 씻고 스스로 옷을 챙겨 입는다. (나름 코디에 신경 쓴다) 로션과 선크림을 바른 후 외친다. "엄마! 나 8시 30분까지 논다!" 


그리고, 8시 30분이 되면 군말 없이 바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이제 할머니는 가방을 들어주고, 교문 앞에서 아이가 잘 들어갈까, 다시 데려가라고 전화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으셔도 된다.


약 2년여의 힘든 시간이 일단락된 느낌이다.

물론, 그동안에 벌어진 학습격차와 흐트러진 루틴을 재정비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아이가 행복하지 못했을 때 우리 가족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몸소 겪었기에 우선은 아이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한다.


시끌벅적한 12살 생일파티

딸은 5월 생일을 몇 달 전부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5월이 되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생일파티쯤이야! 다 초대해!라고 호기롭게 던지고 약간 후회되기 시작했다.


옥상에 넓은 4인 테이블이 있으니 세명 정도 오면 딱 좋겠는데 한 명 두 명 늘더니 7명이 되어 버렸다. 아이까지 총 8명, 좁은 집에서 8명의 생일파티를 준비해야 한다.


거실도 작고 날씨도 좋으니 장소는 옥상으로 하고 크고 4명만 앉을 수 있는 테이블보다는 캠핑용품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장비병이 이럴 때 빛을 보는구나. 캠핑 테이블을 연결하고 테이블보를 까니 제법 파티 공간이 나왔다. 물론 좁지만 아파트 사는 친구들에게는 요런 경험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준비하면서도 뿌듯했다.


생일 당일, 골목에서부터 하이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중간에 모여 같이 왔나 보다.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 스위트 걸~~ 이에요!!"를 외치며 춤을 추고 깔깔대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너무 경쾌하고 밝다. "나는 아싸야. 나는 친구가 없어" 하던 우리 아이가 가운데서 "안녕하세요! 스위트~"하고 외치면 다른 아이들이 한 번에 "걸~~ 이에요!"를 합창한다. 


옥상에 올라와 파티 장소를 보며 우와~ 우와~ 하는 모습부터 아이가 선물을 뜯을 때마다 "너무 멋지다~"하는 리액션, 아이의 말에 빵빵 터져주는 아이들.. 소란스럽지만 밉지 않다. 너무 예쁘다.


1층 주방에서 옥상까지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 상을 차리는데 힘들지 않다. 이런 날이 오게 된 것에 감사한다. 아이들은 저녁까지 먹고 실컷 놀고 집에 갔고, 아이는 행복한 생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인싸가 된 12살 딸의 생일파티




육아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기에 이로써 모든 고비를 다 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앞으로 친구들과 싸우기도 할 것이고,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고 좋아하던 친구와 자연스레 멀어질 수도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야 할 감정과 상처들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는 이제 인싸니까!


이제는 씩씩하게 교실문을 여는 아이가 나에겐 마음의 문을 열고 용기 있게 세상에 나간 것으로 느껴진다. 아이가 낸 용기에, 아이에게 손을 내밀고 기다려준 분들께 감사한다.




혹시, 같은 문제로 고민 중인 분이 계실까요? 모자란 엄마지만 도움이 되실까 하여 조금 더 남깁니다.

- 화가 많이 나시죠. 그래도 아이와 크게 싸우지 마세요. 언젠가는 해결이 될 텐데 아이와 싸우면서 생긴 상처는 꽤 오래가더라고요. 저는 그게 가장 후회가 되었어요.

-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아싸니, 인싸니.. 이해 안 되는 얘기를 해도 그 안에 숨어 있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엔 계속 듣다 보니 아이의 외로움이 느껴졌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아이의 친구가 되어 주려 노력했고, 아이가 친구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친구와의 얘기를 들어주었더니 아이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시시콜콜 별 얘기를 다 해요.

- 아이마다 상황이 다 다르겠지만, 우리 아이들 믿고 꾹 참고 진심으로 들어주면 언젠가 다 해결이 될 거예요. 화이팅입니다!


다음은 어떤 난관이 닥칠지 두렵기도 하지만, 그 건 그 때 생각할래요.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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