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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ug 15. 2022

상처받지 않고 딸과 잘 지내기

이해하기 위한 노력

12살 딸, 팔다리가 길어지고 동글동글 귀여웠던 이목구비가 성숙한 외모로 자리 잡고 있다. 외모의 변화도 크지만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며 의견을 얘기하고, 잘못했을 시 스스로 인정하기도 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이다. '그래, 전두엽이 잘 발달되고 있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등교 거부는 친구들을 사귀고 좋은 선생님과 집에서의 노력으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고, 거부하던 학원도 친구 따라 다시 다니게 되었다. 일기 한 장 쓸 때도 스트레스로 온 집안을 시끄럽게 하던 아이가 이제 투덜거리면서도 스스로 숙제를 하는 모습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다.


이제 좀 편해지는 건가? 




그럴 리가요..

2년 넘게 잘 버텼던 딸이 얼마 전에 확진이 되었다. 어른이라면 완벽한 격리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챙겨주어야 할 것이 많고 무엇보다 열이 40도가 넘으니 아이만 혼자 둘 수 없었다. 걸릴 각오하고 아기 때처럼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주고 수시로 열을 재고 약을 먹이며 간호했다. 자라면서 나를 보는 눈빛이 건조해지고 있었는데 다시 촉촉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이는 몸이 아팠고 나는 마음이 아팠던, 그렇지만 나와 딸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아직은 딸이 어리구나 하며 더 보듬어주고 싶었다. 전염 따위는 걱정되지 않았다.


격리 해제 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숙제가 남았다. 앞뒤로 주말이 포함돼있어 꽤 긴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도 못 꺼내는 엄마지만, 그래도 곧 개학이니 그전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화요일부터 다시 학원에 가야 하니 내일은 숙제하자."

(쾅! 문 닫는 소리 + 안에서 투덜대는 소리)


잠시 멍.. 했다. 물론, 아이의 이런 행동이 처음은 아니다. 등교 거부하며 수없이 겪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많이 나아진 모습에 내가 긴장을 풀었었나 보다. 가족끼리 외식 후 즐겁게 대화하며 집에 온 후 얼마 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럽다.


얘기 좀 하자 했더니 방 안에서 소리를 지른다.

나도 오늘은 상대하기 싫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최근 있던 일들을 곱씹어 본다.




이틀 전, 아이가 친구 생일파티를 다녀왔다. 마침 카카오톡에 생일이었던 그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하 프사)이 업데이트되었다고 표시가 된다. 작은 썸네일에 우리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비상용으로 저장해 놓은 연락처이기도 하고 평소 남의 프사는 관심도 없다. 다만, 우리 딸 모습이라 눌러봤을 뿐이다. 짓궂은 표정을 한 두 아이의 셀카가 재밌어 딸에게 보여주었다. 


"오늘 A가 꼬마화가랑 찍은 사진 프로필로 올렸네. 사진 웃기다. 오늘 찍었어?" (아이는 요즘 관종 놀이에 빠져서, 웃긴 본인의 모습을 좋아한다)


"엄마는 왜 내 친구 프사 막 봐?? 왜 A를 엄마 친구로 등록해놨어? 나랑 친구 감시해? 내가 이래서 엄마만 내 프사 못 보게 해 놓은 거야!! @#$!!!!"


덜컹.


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되어 데리러 가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A 할머니께 연락드려 A의 연락처를 받은 적이 있다. 혹시 몰라 저장을 해두니 자연스레 내 카톡에도 업데이트가 되었다. 그뿐이다.


"엄마는 평소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정보에 관심이 없어. 다만, 작게 보여도 네 얼굴이 있길래 눌러본 것뿐이야. 엄마 얘기를 듣지도 않고 화부터 내니 엄마도 기분이 언짢아진다. 안 그래도 친구 목록 정리하려고 했는데 네 친구들은 안 보이게 숨겨놓을게."


아이도 뭔가 본인이 심했다 느꼈는지 화제를 바꿔보려 한다. 나는 잠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엄마가 자기 친구의 사진을 보는 게 불편하고 감시당하는 것 같을 수 있겠다. 한참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을 텐데 말이다. 그건 내가 좀 이해하기로 해본다.


다만, "내가 이래서 엄마만 내 프사 못 보게 해 놓은 거야!!" 이게 마음에 걸린다. 어쩐지 언젠가부터 아이의 프로필 사진은 게임 화면으로 고정이 되어있다. 그냥 그런 거에 관심 없구나 하고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냥 게임 화면이 말을 걸면 딸이구나.. 하고 바로 알아채게 되었으니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왜 내가 보면 안 될까? 단 한 번도 네 사진이 이랬다 저랬다 얘기한 적 없었는데.. 

평소 아이와 나의 관계에 문제가 있나 돌아봐도 그렇지 않다. 아이가 가끔 쌀쌀맞긴 하나 엄마를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약간의 쌀쌀맞음은 한참 그 나이와 딸의 특성이라 이해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나이에도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셔 이거 저거 보시는 게 불편하다. 은연중 불편하다 표현을 하게 되니 엄마도 이젠 용건 없이 들어오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생이 와서 내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화장품을 써도, 아이와 화장대를 공유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그냥 엄마는 불편하다.


왜일까?

엄마에게 나의 민낯을 보이는 게 불편한 건가? 엄마가 불편하면 도대체 편한 사람이 누구일까? 그 이유는 확실히 아니다. 


아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관심'이다. 딸에 대한 지대한 관심, 내가 치워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부족한 게 있음 채워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두리번'이라는 행동으로 표현되어, 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엄마 죄송해요ㅠ)


나도 가끔 방에 오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엄마의 행동에 괜히 부담을 느껴 퉁명스럽게 대하곤 했었다. 아이도 아마 그런 것 같다. 독립적인 성향의 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으니까. 




오랜만에 세 식구 외식을 했다. 엄마가 기분 좋게 한 턱 내시는 자리였다. 오랜만이니 사진을 남기고 싶어 세 식구를 한 컷에 담기 위해 팔을 길게 뻗었다. 아이는 역시 카메라를 보지도 않으며, 뒤로 기대 사진에 사람이 있구나~ 정도만 알 수 있게 찍혔다. 그래도 오랜만에 세 식구 사진이라 소중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심심하니 셀카를 찍으니 옆에 앉은 아이가 조금 같이 찍혔다. 너 이만큼 찍혔다 보여주니 허락 없이 자기 사진을 찍었다고 삭제하겠다고 내 휴대폰을 뺏다 휴대폰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지만, 퍽! 소리 나게 떨어진 휴대폰에 아이도 당황한 듯 보인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내 사진을 찍다가 네가 좀 나왔는데, 엄마는 그걸 알려줬어. 싫어서 지워달라고 말했으면 바로 삭제했을 거야. 사진은 다시 찍으면 되니까. 이렇게 강제로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


오랜만에 식사 자리를 망치기 싫어 이 정도만 하고 집에 왔다.


그래, 그냥 다 민감한 시기야. 잘못된 행동에 대해 얘기해줬으니 나도 그만하자.




아이는 나를 사랑한다. 물론, 나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딸을 사랑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이지만, 나는 딸에게 하루에도 여러 번 상처를 받고, 아이는 그로 인해 나에게 타박을 받고 기분이 상한다. 큰 문제라 여겼을 때도 있고, 크게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래도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아이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너무 예민하고, 친구와의 세상이 가장 중요하고, 엄마의 개입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시기니까..


'이해하자. 화가 나면 아이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자꾸 잊지만, 그래도 또 되뇌어 본다. (그래도 잘못된 말이나 행동은 짚어줘야겠지요)


나부터도 우리 엄마에게 좀 더 따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이가 9살, 12살에 그린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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