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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Feb 25. 2019

꼬마화가와 길치; 나트랑으로 떠나다 #둘째 날

엄마와 9살 딸의 나트랑 여행기

나트랑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새벽 4시경 간신히 잠이 들어 조식을 놓칠까 걱정이 되었지만 둘 다 설레었는지 일찍 잠이 깨어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아침 식사 & 해변 산책

넓게 펼쳐진 예쁜 바다, 그 옆에 바로 자리를 잡으니 이 곳이 천국이구나.


익숙한 듯 이것저것 가져다 먹는 아이를 보며 많이 자랐구나 하는 뿌듯함과 집에서도 적극적으로 먹음 안 되겠니? 하는 바람이 공존하던 시간.



식사를 마치고 내려간 해변.

호텔에서 제공하는 썬베드는 거의 비어 있고 비치에 누워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텔에 묵지 않는 서양인들이었다.  나이, 덩치 상관없이 남자는 손바닥만 한 수영 팬티, 여자도 모두 비키니 패션이었는데 그게 아이는 신기했나 보다.


평소 새침데기 아이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치마가 젖을까 속옷이 다 보일 정도로 들고 서 있길래..

"꼬마화가! 너 팬티 다 보여~" 하니 딸이 하는 말이..

"괜찮아~ 여기 모두 팬티만 입고 있어~"

래시가드가 미덕인 한국의 수영복 패션이 익숙한지라 서양인들의 패션은 그저 팬티만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구나!


치마를 훌렁 걷고.. 팬티만 입은 패션이 자연스러운 비치에서..



즐거운 해변 산책을 마치고 빨리 수영을 하러 가자는 아이 말에 숙소로 돌아가는데..

모래 묻은 발로 다시 샌들을 신으려니 신기 싫은 거다. 이제야 자기가 모래를 싫어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

이제 번쩍 들어 옮길 수 있는 나이는 지났고 발 씻는 물 항아리에서 물을 퍼서 열심히 씻겼으나 이동을 거부.


하.. 난감하네..


아이와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철칙을 어기고, 호텔 해변이니 안심하며 숙소에 뛰어가서 다른 신발을 가져올 테니 발 씻고 있으라며 방까지 뛰어갔는데 열쇠가 열리지 않는 거다.


분명 121호였는데.. 밥 먹으러 가기 전 방 번호를 보고 나왔고 조식 먹을 때도 그 번호 알려주고 밥 먹었는데..

웬걸. 열쇠고리를 보니 122호라고 쓰여있네. 그 순간 나는 왜 내가 다른 방을 봤을 거란 생각은 안 하고 호텔에서 잘못된 고리를 달아놨구나~ 했을까. 남의 방문을 열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 혹시? 하고 122호 가보니 익숙한 짐들이 보인다. 이런.. 121호에 사람이 없었길 다행이다.


돌아가니 엄마말 잘 듣는 아이, 항아리 물이 바닥 날 때 까지 발을 씻고 있었다.


첫날 수영

생각보다 수영장은 아담했고 동남아 여행은 맥주지~ 하며 여유롭게 맥주도 시키고 아이와 물놀이를 하려는데 작년엔 한참 수영을 배울 때라 겁 없이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던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수영실력에 주눅이 들어 나만 붙들고 떨어지질 않는다.


무서우면 구명조끼를 입으면 되잖아~ 했지만 그건 또 창피해서 싫다는 아이..

결국 아이를 업고 수영하고 녹초가 되어가고 앞으로 남은 날들이 심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으나 구세주처럼 8살 아이의 아빠가 우리 아이까지 같이 놀아주어 좀 쉴 수 있었다.


좋은 날씨, 여유로운 수영장, 잘 노는 아이.. 더 이상 바랄 게 없음에도 마음속에는 고민 덩어리가 풀리지 않고 있을 뿐이고.. 다른 생각을 하며 떨쳐내 보려 하지만 이미 고민의 바다에 빠져버린지라 이런 마음으로 여행 와 있는 엄마가 미안할 뿐이었다.

이런 풍경 속에서 고민만 하던 나. 후회된다.


기운을 내어 아이와 놀아야겠다 다짐하고, 신나게 놀다가 아이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는 이런 데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네.

엄마 수영하는 거 좀 찍어줄래? 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하라던 아이.

못 하는 수영이지만 인생 샷 한번 건져보겠다고 배영에 잠수에..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올라와 사진을  확인했다. 결과는..

사진 바깥쪽 어디에선가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겠지.


하.. 정말 서운했다.

항상 아이만 찍어주고 내가 나온 사진은 아이와 찍은 셀카뿐인데..

그래도 놀러 왔으니 나도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낄낄대며 사진 찍던 아이는 나름 장난이었겠지만..

어찌나 서운한지..


"엄마 좀 슬프다. 꼬마화가는 나한테 상처를 준거야.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포즈 취했는데 부끄럽다." 했더니 지금이라도 찍어준다길래. 괜찮다.. 하긴 했지만 나름 섭섭함이 남았다.


마사지

밤 비행기에 수영에 피곤했으니 오후에는 마사지를 예약다.

처음으로 그랩을 불러 타봤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여행 내내 이용하면 좋겠다.


새로 오픈하여 깨끗한 J SPA

깔끔한 시설에 정성스러운 마사지에 아이는 꿀잠을 자고.. 난 마사지받는 내내 또 고민..

떨쳐버리고 푹 잠이 들고 싶었으나 한국에서 가져온 고민 덩어리는 가져온 짐들 중 가장 무겁구나.


그래도 마사지는 참 좋았다. 이 가격에 이런 서비스라니.. 제시된 금액을 내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다만 마사지 후에는 눈썹은 실종되고 이마에 수건 자국이 남으므로 못생겨짐은 감수해야 한다.

가기 전에 또 한 번 오기로 약속하고 아이가 사달란 튜브를 사러 이동.


사실 우리가 가려던 샵에는 튜브를 안 파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의 목적은 유명하다는 베트남 다이어트 티.

한국에서 사면 비싸다 하여 현지 왔으니 사가겠어라는 맘에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이동하는데 여기저기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신호 없는 거리의 오토바이들. 여기저기서 뿜어 대는 담배연기에 5분 정도 거리가 20분 정도로 느껴지던 시간.

미안하다. 튜브도 사줄 거야.


그 유명하다던 티는 품절이었고, 튜브를 사러 다시 그랩을 불러 나트랑센터로 이동했다.

Luna New Year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누런 금덩이를 연상시키던 조형물들이 인상적이던 나트랑 센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한국 노래가 들리고 지오다노 매장이 보인다.

오잉 여기 한국인 가요?


저렴한 가격에 다행히 아이가 맘에 들어하던 튜브를 살 수 있었고 차 타고 오는 길에 식당들이 많이 보여 슬슬 걸어 저녁 먹으러 이동하는데 역시 또 신호와 상관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달려오는 오토바이들. 여행을 즐겁게 하려면 이 오토바이들에 익숙해져야겠다.


기껏 긴장하며 길을 건넜는데 식당처럼 보이던 곳은 커피숍인 듯.. 게다가 입구의 테이블들은 야외석이라 그런지 모두 흡연 중. 그래 다시 건너가자.


용기를 내어 건너왔던 길을 다시 건너는데 몇 번이고 아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간신히 길을 건넜다.

그러나, 아이 발에 한 짝만 신겨 있던 신발. 나머지 한 짝은 중앙선에..


여기 가만히 서있어야 해. 하며 길을 건너려는데 내 손을 꽉 잡아당기는 아이..

괜찮아. 엄마 괜찮아. 얼른 가져올게. 하며 사실 2~ 3초 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우리 모녀 잠시 영화 한 편 찍었다.


우연히 찾아간 식당


다행히 아이 맘에 드는 식당을 찾았고 들어가서 예쁜 인테리어에 아이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다만, 혼자 계신 종업원이 영어가 힘들어 나와 종업원 영어 단어로만 부지런히 소통하여 메뉴를 주문하였는데..


"엄마는 영어도 못하면서 왜 영어로 말해?"

"응?? 뭐라고?"


내가 좀 오버한 것 같기도 한데.. 안 그래도 맘이 안 좋은 상태에서 급 서운한 맘이 몰려왔다.

"꼬마화가. 너는 오늘 엄마한테 두 번 상처를 줬어. 첫 번째는 사진 찍어주는 줄 알고 혼자 포즈 취했는데 장난을 쳐서 엄마를 부끄럽게 했고 두 번째는 엄마가 놀지도 않고 영어 공부하는 거 알잖아.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엄마가 창피하지? 그리고 엄마도 베트남 말을 모르고 저분도 한국말을 모르니 영어로 대화하는 거야. 그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상처 받아. 엄마 좀 슬펐어."라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 (엄마 뒤끝 쩔..)


그러자 아이의 하는 말이..

"사진 찍어주면 되잖아.."


아.. 그게 아닌데.. 그래도 내 마음을 전달했으니 되었다.

아직 상대방을 배려할 나이는 안 되었구나.. 하긴 이제 9살 되었으니.. 나도 참..


그래도 이후에 엄마 여기 서봐~ 저기 서봐~ 하며 사진을 찍어주던 아이..

고마워.


엄지 척! 하며 맛있게 먹었던 음식


아이의 그림 선물

하루를 마무리하고 쉬려는데 아무래도 표정이 밝지 않은 엄마가 맘에 걸리는지 아이가 무언가 그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펀지밥

엄마 기분 좋게 해 주겠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펀지밥을 그려서 보여준다.

보지도 않고 기억으로만 그려 준 스펀지밥.


괜히 울컥했네. 고마워. 미안해.


다음 날은 기대하던 스노클링 하는 날이니 정말 다 잊고 즐겁게 보내보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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