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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r 25. 2022

#10. 3월의 선물, 설중 캠핑

뜻밖의 수확, 아이의 변화

2월 말, 태안의 아름다운 바다 캠핑의 감동과 피곤함이 희미해질 무렵 우리는 다음 캠핑을 다녀왔다. 이번 장소는 양평에 새로 생긴 '모짜르트 캠핑장'. 내가 캠핑에 빠졌지만, 캠핑장 정보는 잘 모른다는 걸 인스타그램이 어찌 알고 친절하게 관련 피드를 계속 올려주어 찾게 된 곳이다. (가끔은 인스타그램이 무섭다)


항상 캠핑 가기 일주일 전부터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데, 다행히도 금~일 중 금요일 오후까지만 비가 내리고 그친다기에 큰 걱정은 안 했다. 그러나 시일이 다가올수록 비는 점점 주말 쪽으로 옮겨가고 눈도 살짝 보태졌다. 그래도 3월 중순인데 비만 좀 오겠지, 그리고 잠시라도 그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변경 없이 추진했다.


이번에도 지난번 함께 했던 친구 가족과 함께다.




캠핑 시작!

오후 2시에 업무를 마치고,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이미 점심시간에 차에 음식물까지 모두 옮겨놓은 상태여서 빠르게 출발할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아이는 친구와 통화하며 게임을 했고, 덕분에 아이들의 귀여운 대화를 들으며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항상 캠핑장 근처에 다다르면 길이 험해지는 것 같다. 맞은편에서 차가 안 오길 바라며 꼬불꼬불 길을 지나니 어느덧 도착했고 친구네는 먼저 도착하여 정리 중이었다. 동생들과 놀고 싶어 기대했던 딸과 언니(누나)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친구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놀기 바쁘다.


이번엔 무거운 면텐트 대신 가벼운 쉘터형 텐트를 가져왔다. 가볍게 치고 철수하려는 계획이다. 쉘터 안에 야전침대를 양옆에 두고 가운데 테이블을 두어 의자 없이도 테이블을 사용하는 입식으로 꾸몄다. 그리고 가려지지 않는 창과 좁고 낮아 취침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베스티블은 주방으로 꾸몄다. 요리를 할 때는 앉아서 하고, 주로 출입은 반대편 큰 문으로 할 계획이었다. 협소한 공간에 주방 짐을 놓으니 꽤 좁긴 하다.


이전 텐트에서 면텐트의 넓고 쾌적함을 맛본 딸은 좁은 텐트가 꽤 못마땅하다. 엄마가 면텐트 접다가 날아갈 뻔 한 걸 모르는구나. (실제로 날아갈만한 체격은 아닙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만족스러운 저녁

레벨업한 친구와의 캠핑

아이랑 둘이 다니며 간단하게 먹는 것도 좋았지만, 내심 다른 캠퍼들의 풍성한 저녁이 부럽기도 했었다. 친구와 함께 하니 제법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어른들이 한 잔 하는 사이 아이들은 여러 게임을 만들어내며 놀기 바쁘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끼고 나무 막대 하나씩 들고(아르미터라는 이름도 지어줌) 전사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아이들 답게 노니 유튜브나 만화는 찾지 않는구나. 딸은 '언니 1호'라는 호칭도 얻게 되었다.


아이답게 노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눈뜨니 렛잇고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친구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다시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고 밖에서 두런두런 소리만 들린다. 아직 7시도 안 되었는데 무슨 일이지? 하고 창문을 열어 보니..

당장이라도 눈앞에 엘사가 Let it go! Let it go! 를 외칠 것 같이 온 세상이 하얀 겨울 왕국이다.

눈이 삼켜버린 캠핑장


이럴 수가. 우선 큰 문을 열면 아이가 추울 거라 베스티블 쪽으로 나가려 하니 쌓인 눈의 무게와 흠뻑 머금은 습기로 스킨이 축 쳐져 기어 나가야 할 정도다. 위에선 기분 나쁘게 물이 뚝뚝 떨어진다. 밖에 나가보니 친구가 기름이 떨어졌었다며, 캠핑장에서 다행히 구매해서 기름을 넣고 있다.


시간이 이르니 우선 텐트로 다시 돌아갔다. 둘째 날은 근처 양떼 목장도 가보고, 주변을 관광하려 했는데 우선 그 계획은 물 건너갔다. 이제 눈 속에서 하루를 어찌 보낼 것인가와 다음 날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쉘터 천장에 쌓인 눈과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생각보다 결로가 심한 편은 아니었으나 쉬지 않고 내리는 눈과 실내에서 떨어지는 물이 꽤 꿉꿉하다. 팬히터가 고맙기만 하다. 문제는, 베스티블! 스킨 원단이 쉘터보다 좀 얇게 느껴졌는데 역시 엄청난 결로와 습기로 꺼내놓은 짐들이 다 젖었다. 높이도 낮아 나가려면 머리로 그 물기를 싹 쓸고 가야 한다. 휴.. 이 텐트 또한 나랑은 이별이다. 결국, 야전침대에 누워 새 텐트를 지르고 말았다. 눈이 절정인 그 시각에 나 또한 돌고 돌아 결국 간다는 그곳에 가고야 말았다. (캠핑하시는 분들은 아시는 그 브랜드 맞습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에 외출은 꿈도 못 꾸지만 아이들은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 좁고 물 떨어지는 텐트지만 이모~ 하며 찾아와 노는 아이들이 귀엽기만 하다. 그 사이 샤워도 하고 왔지만 머리가 마르질 않는다. 조금 말랐다 싶다가도 나갔다 오면 다시 젖고, 말랐다 젖었다 반복하니 꾸덕꾸덕하다. 나이 들수록 쳐지는 머리에 신경이 쓰였는데, 머리뽕을 제대로 세우는 방법을 찾았다.


즐기자, 설중 캠핑

꿉꿉하고 집에 갈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멋진 경치에 이것 또한 추억이고 날씨가 준 선물이라며 우리는 눈을 즐기기로 했다. 아이들은 양 텐트를 오가느라 신발과 양말이 마를 틈이 없고, 어른들은 갈아입히고 말려주고를 반복한다. 친구네 등유 난로 주변에 매달려있는 꼬질꼬질한 아이들 양말과 신발이 귀엽기도 하다.


정말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토요일이라 사이트가 꽉 찼다 들었는데, 이 눈을 뚫고 오는 용자 캠퍼가 있을까? 했으나 의외로 하나둘씩 도착하며 사이트가 채워진다. 할 일 없이 가는 차(무사히 잘 가나), 오는 차(무사히 잘 올라오나)만 구경하다 지루해져 나가서 삽으로 눈을 치우고 있을 무렵, 캠핑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제설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눈발은 약해졌고, 저녁이 될 무렵 그쳤다.

일단 무사히 올라온 차들이 지나온 그 길을 따라가면 되니 집에 갈 걱정은 좀 덜었다.


아름다운 경치


캠핑의 꽃, 불멍


2박 3일이라 확실히 이전보다 여유롭게 친구와 대화하고, 불멍도 실컷 즐겼다. 3월의 폭설을 날씨의 선물이라 여기는 친구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칭찬하며 살면서 몇 번 못해볼 이런 경험을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

마지막 날은 일찍 철수하여 쉬어야 하고 오후에 약속도 있어 부지런히 철수 준비를 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폭설을 겪은 나에게 장애물이 안 된다. 평소 춥찔이라 칭하는 내가 티 한 장 걸치고 일하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캠핑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도 비 오는 상태에서 눈 속에 묻힌 젖은 짐들을 정리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린다. 더 지체되면 차 안에서 기다리는 아이도 춥고, 나도 체력이 떨어질 것 같아 마지막 힘을 내어 모든 정리를 끝냈다. (김장봉투는 정말 필수품. 미리 넉넉히 준비하여 친구네도 줄 수 있었다)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마침 친구네 차가 방전된 것을 알게 되었고 급하게 케이블을 빌려왔으나 너무나 짧다. 아직은 미끄러운 오르막길이라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어림도 없다. 친구는 결국 서비스를 부르기로 했다. 같이 출발하기엔 오후에 일이 있어 아쉽지만 안녕!




이렇게 올해 두 번째 캠핑을 무사히 다녀왔다. 2박으로 가니 친구와 대화할 시간도 있었고, 무료하여 어찌할 줄 모르던 시간도 겪어볼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 이것도 저것도 다 눈에 걸려 쉬지를 못하는 편이라 그 시간이 편하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이번 캠핑을 다녀오면서 물론 나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의 변화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친구의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 아이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연 속에서 실컷 놀아서 스트레스가 많이 풀린 것 같다.


캠핑 다녀와 피곤할 텐데도 짜증한 번 안 내고 숙제를 마무리하는 모습에 정말 감동했다. 게다가 이번 주 5일간은 단 한 번도 늦잠, 짜증 없이 제시간에 스스로 일어나 빠른 준비 후에 즐겁게 등교하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잠시 눈물 좀..)


친구의 아이들에게도 의젓한 언니, 누나의 모습이었고, 아이들도 정말로 우리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올해 친구와 캠핑을 시작한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누군가 들으면 뒷목 잡을 소비가 동반되지만, 캠핑이란 취미를 갖게 된 것을 뿌듯해하며 이번 캠핑 후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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