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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pr 09. 2022

#11. 미니멀 캠핑, 할 만 한걸!

미니 쿠퍼로 캠핑 가기

지난번 캠핑에서 갑작스러운 폭설과 좁고 불편하고 눅눅한 쉘터로 고생한 기억은 일주일 만에 사라져 버렸다.

한 주 쉬었더니 슬슬 캠핑이 가고 싶어 진다. 안 되겠다. 1박이라도 아이와 둘이 다녀와야겠다. 급하게 서울 근교 캠핑장을 알아보니 예약하기 힘든 곳이라 알고 있는 연천 리버힐 캠핑장에 자리가 남아있어 예약부터 했다. 게다가 프리미엄 사이트라 텐트와 바닥난방이 제공된다. 난방용품과 텐트만 아니어도 짐이 꽤 가벼워질 텐데, 미니멀 캠핑 도전해봐?

 


맥시멀 캠퍼의 도전

좋아하는 건 다 가져야 하는 나는 소위 맥시멀 리스트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브런치나 유튜브에서 가장 즐겨 보는 콘텐츠는 "미니멀리즘"에 관한 것이다. 깔끔하고 가벼운 미니멀리스트의 집과 소유물에 늘 자극을 받지만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다.


캠핑을 할 때도, 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할 것 같아 내 기준에서 완벽하게 구비하다 보니 큰 차와 루프 박스에 꽉꽉 채워 떠나게 된다. 캠핑은 즐겁지만 짐을 내리고 정리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다. 미니멀하게 다니고 싶다. 그래서 장비를 바꿔봤는데 무거운 것 > 가벼운 것으로 바뀌었을 뿐 가짓수는 여전하다. 그리고 다시 무겁고 튼튼한 것으로 돌아간 장비도 많다.


2박은 아무래도 텐트에서 있을 시간이 많기에 어쩔 수 없다 쳐도 1박은 정말 가볍게 다니고 싶다. 이번엔 텐트와 난로를 안 챙겨도 되니 다른 짐들도 확 줄여 가볍게 떠나 보자.


마침,   전부터 대기를 걸었던 차를 받았기에 캠핑과 어울리지 않는 미니미니한 미니 쿠퍼로 도전해보기로 한다.  차를 가져가게 되면 분명 짐도 그만큼   같다.




연천으로 출발

작은 트렁크와 뒷좌석에 실릴 만큼만 짐을 챙겨 떠나는 마음이 가볍다. 요즘 뚜따 드라이브의 맛에 푹 빠진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뚜껑을 열라고 성화다(컨버터블의 뚜껑을 여는 걸 뚜따라고 하는 듯). 기분 좋게 뚜껑 열고 봄 날씨를 즐기며 운전하는 맛에 차가 두대씩이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낭비일까.. 하며 고민했던 게 다 날아간다. 과소비를 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그러나, 나는 뚜따 초보.. 연천 가는 길에 그렇게 터널이 많을 줄이야. 그나마 천정이 유리로 되어 있는 밝은 터널은 갈만 했는데 산을 통과하는 검은 터널이 눈앞에 나오니 식은땀이 난다. 시속 30 이하여야 뚜껑을 닫을 수 있는데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속도를 갑자기 낮출 수도 없다. 갓길도 없다. 그냥 그대로 터널로 진입했다.

구애애앵!! 엄청난 소음에 귀가 멀 것 같다. 터널 안 공기도 당연히 안 좋겠지. 길기도 하다. 터널 운전은 늘 긴장되는데 뚜껑을 연 상태로 달리니 벌거벗고 달리는 느낌이다. 게다가 창피하기도 하다.


그렇게 두 개의 터널을 지나고, 내 머리는 일주일 안 감은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아마 터널의 공기 탓일 거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마침 갓길이 나와 뚜껑을 닫고, 앞으로 모르는 길을 갈 땐 가는 길에 터널이 있는지 꼭 확인해봐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연천 즐기기

텐트를 안 쳐도 되니 꽤 여유롭다. 바로 캠핑장으로 가지 않고 식사도 하고 근처 관광도 할 셈이다.

신기하게 집에선 안 먹는 생선을 밖에 나오면 잘 먹는다. 엄마가 보시면 배신감을 느끼시겠지.


원래는 재인폭포를 가려했는데, 식당 가는 길에 보니 "연천 전곡리 유적지"가 근처에 있었다. 왠지 아이가 더 좋아할 것 같다. 식사 후 바로 이동했는데, 넓은 잔디밭과 파란 하늘, 조용한 공기에 일주일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진 곳이다.


네잎클로버 찾는 아이.. 덕분에 나는 휴식


여유롭게 곳곳에서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도 편안해 보이고, 근처에 살면 이곳에 자주 올 것 같다. 가는 길에 시장도, 닭갈비 집도 들러야 해서 오래는 못 있었지만 편안했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전곡 시장에서 닭갈비를 구울 석쇠를 사고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무슨  먹을래? 포켓몬빵!! 하고 외치는 아이.. 눈먼 포켓몬빵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없지. 다른 빵을 사고 닭갈비집에 들러 초벌한 닭갈비를 사서 캠핑장으로 이동!


오랜만에 둘만의 캠핑

딸과 둘만의 캠핑은 작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시큰둥해도 캠핑가자 하면 잘 따라나서는 딸이 고맙다.

미니멀하게 챙긴다고 원래 쓰던 화로대는 두고, 초경량 매쉬 화로대를 가져왔다. 설치하고 불을 붙이려는데 토치 가스가 다 되어 불이 잘 안 붙는다. 캠장님께 빌려달라 하니 직접 붙여주시겠다며 오셨는데, 이 화로대는 약해서 바람에 날아간다며 튼튼한 걸 빌려주셨다. 미니멀 템은 가볍고 약한 것들이 많다. 가볍고 튼튼하고 부피 적은 그런 화로대를 찾아봐야겠다며 마음속 장바구니에 추가한다.


석쇠 하나만 가져와도 닭갈비 가능

음식을  오니 너무 간단하다. 석쇠에 닭갈비를 구워 아이와 저녁을 먹었다. 친절한 캠장님 덕에 고기를 쉽게 구웠지만, 사실 장비를  빌렸으면 고생  했을  같다. 바람이 많이 불어 매쉬 화로대에서 고기를 굽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끓일 손바닥만  냄비 하나 가져갔는데 아마 거기에 익히지 않았을까?



저녁은 여유롭게 영화를 보며, 아이와 대화하며 편안하게 마무리했다. 설거지하고 오니 잠든 아이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불편할 텐데도 투정 없이 집처럼 지내는 모습이 예쁘다.





정리도 가볍게

여유롭게 아침 먹고 커피도 마셨는데 짐이 적으니 정리도 빠르다. 가져온 짐들을 돗자리에 모두 모은 뒤 소프트탑을 열고 넣으면 끝~! 이번엔 텐트와 난방이 제공되어 가능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은 짐으로 캠핑을 한 게 신기하고 뿌듯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경량 텐트로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새 식구가 된 제시퍼 (아이가 지어준 이름)


새로 산 차 타고 여행도 가고 싶고, 캠핑도 하고 싶어 급하게 준비한 꽤 만족스러운 캠핑이었다. 그리고 적은 짐이 주는 마음의 여유도 몸소 느낄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이 기억 잘 살려서 다음 캠핑에도 짐을 간소하게 챙겨봐야겠다.



이 분위기 그리워 떠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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