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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ug 01. 2022

#14. 사서 고생, 캠핑

헤어질 이유 백만 가지

너무나 아름다운 바닷가로 2박 3일 캠핑을 다녀왔다. 

폭염과 폭우를 동시에 겪고 턱에 큰 피멍(폴에 가격 당함)을 훈장처럼 달고 물 먹은 솜처럼 귀가했다. 잠시 멈춘 비에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젖은 텐트와 짐들을 집에 옮겨두었다. 남은 음식물도 상하면 안되니 수 차례 왔다 갔다 하며 짐들을 옮겨두고 나니 밤이다. 다음 날 출근을 제정신으로 할 수 있을까? 누굴 탓하나. 늘 무리하게 일정 잡고 짐 싸고 움직이는 내 탓이다.


밖에 나가서 돈 쓰고 왜 고생하는지, 잘 따라다니면서도 늘 의문인 딸에게 "그래! 네 말이 맞다!" 하고 싶을 정도로 이젠 캠핑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너무 힘들다.


매 달 캠핑을 다녀오면서 숙련되어 더 편해질 거란 기대와 달리 점점 힘들어지고 지쳐가니 문제가 있다.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캠핑을 왜 하고 싶은 건데?

음.. 우선 캠핑 유튜버들의 캠핑이 부러웠다. 산들산들 바람을 타고 막히지 않는 도로를 운전하여 한적한 캠핑장에 도착하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장비들을 빠르게 세팅한다. 그리고 팔아도 될 법한 음식들을 뚝딱 만들며 예쁘게 플레이팅 후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와 함께 한 잔 기울인다. 영상을 보면서도 힐링이 되는데 직접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래서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달랐다. 주말을 이용해야 하니 길은 늘 막혔고, 캠핑장 가는 길 대부분은 좁고 위험했다. 자칫하면 구르겠는데?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산 길도 많았다. 가는 길이 험하다는 후기를 보면 믿고 그 캠핑장은 거르게 되었다. 예쁘게 세팅?  할 수 없다. 먼 길 오느라 지친 데다가 어둑어둑해지기에 얼른 텐트를 치고 아이의 식사를 챙겨야 한다. 텐트라도 손에 익었음 괜찮겠지만 새로 산 텐트는 치는 데도 오래 걸린다. 그 사이 아이는 배가 고프다, 벌레가 있다 하며 투덜대기 시작한다.


멋진 음식? 집에서도 안 하는 요리가 캠핑장 가면 더 잘 될 리 있을까? 다행히 밀키트가 잘 나와 미리 메뉴만 잘 챙겨가면 그래도 한 끼 식사는 충분히 잘할 수 있으나 아주 난장판이 된다. 밀키트 재료가 들어있는 비닐들과 설명서들이 뒹구는 사이에서 급하게 식사를 마친다. 설거지 거리를 통에 모아 두고 테이블을 닦아놓으면 그때서야 이제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느껴지고 장작도 눈에 들어온다.


그래, 그 시간이 너무 좋다. 아이와 도란도란 얘기하고 서울보다는 더 또렷이 보이는 별도 바라볼 수 있는 그 시간과 추억이 주는 가치는 모든 힘듦을 다 덮게 만든다.



그럼, 뭐가 힘든데?

욕심과 불안함 때문이라고 바로 대답할 수 있다. 


집처럼 편하게 이것도 저것도 준비하고 싶은 욕심, 뭔가 아쉬움이 남으면 더 나은 장비라면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장비 욕심, 남들처럼 멋진 장비를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리고, 불편할까 봐 모자랄까 봐 하나라도 더 챙기는 불안함도 문제다. 버너가 있음에도 고장 날까 봐 하나 더 챙기고, 날이 덥지만 혹시 밤에 추울까 봐 전기장판도 챙긴다(당연히 안 쓰고 온다). 동반 캠핑일 경우 우리만 챙기면 안 될 것 같아 하나라도 더 넣게 되니 큰 차에 짐을 꽉꽉 채우게 된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내리고 다시 올려야 하니 안 힘든 게 이상하다.


추가로, 여행 끝엔 항상 내가 가장 힘든 것 같은 억울함마저 남았다. 욕심과 불안함, 그리고 억울함..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몸이 힘든 것보다 나를 더 지치게 한다.


그래서, 캠핑 그만하고 싶니?

솔직히.. 계속하고 싶다. 단, 안 힘들게 하고 싶다. 

아무리 비싸고 튼튼한 장비여도 나에게 무겁고 버거우면 그건 나에게 좋은 장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힘들까 봐 차박을 선택하며 차도 바꿨던 초심으로 돌아가 차박 컨셉으로 가볍게 다녀볼까 한다. 


그리고, 적당한 불편함은 감수해야겠다. 모든 일에 다양한 케이스를 생각하여 미리 준비하는 성향은 살면서 도움이 많이 된다. 하지만, 불편함을 예방하려다 짐에 치여 죽을 지경이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몸은 피곤하지만 아 이번 캠핑 너무 좋았어~ 하던 초반의 캠핑 스타일로 돌아가야겠다. 





너무 더운 날씨에 많은 짐에, 두 아이를 혼자 챙기며 몸과 마음이 다 너무 지쳤었다.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오직 내가 추진한 여행에 따라와 아이들도 더위 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텐데.. 친절한 엄마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그게 내가 원하던 여행은 아닌데 말이다.


아이와 즐거운 추억을 쌓기 위해, 나도 자연 속에서 편안한 힐링을 찾기 위해 시작한 캠핑인데..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도 아닌데 나는 투덜이가 되어 버렸다. 


아이에게 "우리 캠핑 그만할까?" 했더니 "안돼! 엄마 돈 많이 썼잖아! 계속해야지!"하고 톡 쏜다. 요 말 뜻 안에는 엄마와 계속 같이 캠핑 다니고 싶단 의미가 숨어 있을 거라고 나름 해석해 본다.


하지만 당분간은 캠핑을 쉴 생각이다. 쉬면서 나와 아이가 간단히 하루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짐만 놔두고 정리해 봐야겠다. 그리고 이전처럼 주변도 즐기고 간소하게 먹고 하루 푹 자고 다음날 빨리 올 수 있게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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